밤을 걷는 당신에게

어느 다정한 여름

by 이학민

여름밤 불면의 주범은 모기입니다.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에도 나오지 않나요?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모기가 있었다’ 제목이 ‘모기의 노래’였던가요. 아, 그런 건 없다고요? 밤이라 그런지 기억에 오류가 있나 봅니다. 나에게는 종종 이런 밤이 있습니다. 지난 일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오지 않은 일을 미리 염려하고, 사소한 기억조차 흐트러트리고는 하염없이 몽상하는 밤이요. 어쩌면 지금 당신의 밤처럼요.

(썸네일) 밤을 걷는 당신에게.png 새벽에도 좋아요


여름의 밤과 새벽에는 주로 작업을 합니다. 여기서 작업이란 글 쓰는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일정 때문에 자야 하는 밤이 있습니다. 피로한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엔 일찍 자리에 눕습니다. 그런데 도통 잠에 빠져들지 못합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일어납니다. 걷다 보면 조금 나아지니 밤공기를 맡으러 밖으로 나갑니다.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내려가는 동안 찜찜합니다. 보통은 모기가 많아서 그렇지만, 오늘은 술 냄새가 원인입니다. 아니 대체 누가 이 좁은 공간에 술 냄새를 남겨놓고 간 거야. 미간이 구겨집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따뜻한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냄새만 덩그러니 남겨진 이 순간은 왠지 불쾌합니다. 다행히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합니다. 털레털레 밤으로 들어갑니다.


은근한 여름 바람에 이런저런 생각을 흘려버리니 홀가분해집니다. 책에 쓴 것처럼 너무 많은 의미가 나를 괴롭힐 때는 산책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걸어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들이 떠오릅니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 없는 문제를 한참 고민하다 보니 시간이 꽤 늦었습니다.


다시 엘리베이터 앞. 문이 열리자마자 코를 막습니다. 술 냄새를 남긴 그 사람은 오늘 무엇을 마셨을까요. 소맥을 말았을까요, 막걸리였을까요? 쓸데없는 궁금증은 곧 억지스러운 짐작으로 번집니다.



그 사람도 많이 외로웠나 보다.

다가올 밤이 참 두려웠나 보다.



문이 열리고 걱정이 들어옵니다. 지친 하루 끝에서 술에 기대 취하고 싶었을 그 사람의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 발이 무겁습니다. 혹여 잠들지 못하고 깨어있는 것은 아닐는지, 쓸데없는 오지랖을 이불로 덮어두고 침대에 눕습니다. 이 세상에는 외로운 이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밤은, 겉으론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소란이 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그 생각을 하느라 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벌써 아침입니다.


아침 일찍 SNS를 열어 봅니다. 사실 새벽에도 열어보았습니다. SNS는 신기합니다. 밤에도 새벽에도 무언가를 올리면 하트가 날아옵니다.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엄청 많은 것 같습니다. 그 하트가 뭐라고 새벽마다 혼자가 아닌 느낌입니다. 어쩌면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면은 괴롭지만, 아득함이 덜어지면 견딜만하니까요. 그리하여 나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새벽에도 좋아요. 당신이라면.



밤은 혼자가 가장 선명해지는 시간입니다. 고민이 별이라면 잠 못 이루는 당신의 밤이 가장 빛나는 어둠일 겁니다. 그럴 때 혼자인 우리가 모이면, 그리하여 우리의 그림자가 모이면, 별빛의 눈 부심이 조금은 가려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침까지 머릿속 소란에 잠 못 이루는 밤이라면 혼자인 서로에게 다정히 말을 걸면 좋겠습니다. 혹시 자고 있으면 어쩌나, 싶을 때면 여기로 오면 됩니다. 이곳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댓글이건 메일이건 SNS건 언제든 좋습니다. 이따금 이른 잠에 빠져서 당신의 연락에 반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만 양해해 주신다면 당신이 남겨둔 언어는 늦더라도 꼭 귀를 열고 듣겠습니다.


우리가 함께한다고 해서 외로움이 가시지는 않을 겁니다.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러나 함께 외로우면 조금은 나아질 거라 믿습니다. 동질감은 언제나 위안이 되고, 다정함은 늘 마음의 허기를 채워주니까요. 그러니까 밤을 걷는 당신이 외로울 때. 우리 함께 외롭기로 해요.



(한마디) 밤을 걷는 당신에게.png






어느 다정한 여름.png
무더위와 불면과 모기와 장마와 태풍을 가진 여름은 내게 가장 난처한 계절입니다. 긴 여름을 버티려면 더 많은 다정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름마다 다정한 기억을 부채처럼 손에 쥐고 내게 불어봅니다. 나의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과 내 실력을 믿어주는 사람과 끝내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운 여름도 견딜 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름이라면 “얼어 죽을” 같은 욕을 들어도 조금 시원하겠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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