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생각나는
외로움도 나이 따라 커진 건지, 하루는 외로움 따위, 숨기고 가리는 게 서로를 위한 일이라 믿던 내가, 외롭다고, 너는 그렇지 않으냐고 친구에게 물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다들 그냥 버티고 사는 거지.
돌아온 대답에 웃기게도 나는 안도했다.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이유로. 그때 자주 가던 단골 가게가 떠올랐다. 장사가 통 안된다는 사장님의 말을 들을 때마다 혹여 사라질까 걱정하던 그곳. 들어가지 않아도 오가다 마주칠 때마다 위안을 느끼던 그곳. 외로움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마음 안에, 단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위안이 되는 감정.
외로울 때 사람을 만난다는 건, 사람으로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외로움을 확인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의 외로움을 별거 아닌 흔한 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외로움이 외로움을 만나면 비로소 안심하고 불안이 가시며 그 크기도 덜어진다고 믿는다. 공감과 동질감만큼 사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은 없으므로.
그리하여 지금,
나의 외로움에 문을 연다.
지친 하루 끝에서 대문을 연다. 신발을 벗는데 외로움이 마중한다. 늦은 시간 혼자 먹는 밥. TV 볼륨을 높여도 채워지지 않는 거실. 보고 싶은 얼굴들. 진짜 내 사람이라 믿고 내 일부를 줬는데, 그걸 가지고 떠나버린 사람의 뒷모습이 차례로 지나간다.
주말에는 사람 숲을 떠돈다. 사람 많은 거리로 나간다. 그런데 모든 말소리가 무성영화처럼 느껴진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부럽고 부담스럽다. 집에 돌아와 예능을 보며 잠시 웃는다. 예능이 끝나자 웃음도 멈춘다. 맥주 캔도 바닥을 보인다. 채널을 이러저리 돌리다 문득 나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유난했었나. 내가 답한다. 어제랑 똑같았지 뭐.
다시 묻는다. 그럼 요즘 특별히 힘든 일이 있는가. 이번엔 대답하지 못한다. 눈물이 대답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런 순간 같은데 나는 울 수가 없다. TV가 하나도 슬프지 않아서다. 어울리는 채널을 찾지 못해서다. 휴대폰을 집어 든다. 바빠진 친구들은 이제 일부러 날을 잡지 않는 한, 만나기 힘들다. 어느 날부터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들은 출석부가 된다. 부르면 대답하고 이내 침묵하는, 존재의 확인 말고는 할 게 없는 딱딱한 목록이 된다.
손잡아 줄 이가 하나 없는 것 같아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눈으로 외로움을 다 녹일 기세로 하염없이 흐느끼다 새벽을 맞는다. 캄캄한 눈길을 걷는 것처럼 추위와 발소리만 느껴져서 이불을 끌어당기는데 문득 바람이 몰아친다. 괜찮다. 아니, 괜찮았으면 좋겠다. 안도가 바람 되어 분다. 잠시 마음이 시리다.
이 외로움이 너의 외로움과 닮았다면, 외로움에 서툰 내가 외로움에 지친 너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워하는 것만으로도 빼곡한 계절이 있습니다. 버티고 버티다 기어코 늦은 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그저 바람이 불었을 뿐인데 마음이 넘어지고, 밤이 되었을 뿐인데 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계절이 있습니다. 오래전에 두고 온 마음이 너른 들판에 피게 될지 몰라서 먼 허공을 자주 바라보는 계절이 있습니다. 차마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가을이 우리 생애 꼭 한 번은 있다고 믿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