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중이었다. 나란히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때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별안간 그는 소리 내어 울었다. 선득해진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한 구부정한 자세로 그의 어깨에 손을 내려놓았다. “그래, 울어. 실컷.” 허락하듯 울음을 부추기고는 그의 옆에 앉았다. 신호등이 파랗게 변했다. 호기심과 황당함이 뒤섞인 시선이 우리의 정수리를 훑고 지나갔다. 새삼 눈물은 주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가 붉게 변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눈물을 다 쏟아낸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자신도 왜 운 건지 모르겠다면서. 자기도 모르는 눈물이라니. 알 것 같았다. 다만 설명할 수 없었다. 하루 끝에 찾아오는 삶의 허무가 그러하듯. “참 별일이다.” 그렇게 말했지만 지나고 보니 별일 아니었다. 뜻 모를 여름밤은 지나갔고 다시 그는 웃고 먹고 하루 끝 안온함에 기대 잠드는 보통의 일상을 산다. 어느 한때 만만치 않은 세상에 넘어졌지만 끝내 살아낸 거였다.
특별한 방법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지지 않으려고 애쓴 것뿐이란다. 견딤 이후에 찾아온 것은 또 다른 견딤이었으나 이제는 쉽게 주저앉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울 일이 있을 때는 울고, 괜찮은 날에는 게으름도 부리며 되찾은 일상을 누리는 중이란다. 그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사는 일이 슬픔을 모으는 일처럼 느껴지는 날이 내게도 있었다. 바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고 행복한 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날. 잘 될 거라는 낙관도 거짓처럼 들리고 괜찮다는 말도 목에 걸려 나오지 않는 날. 그런 날에는 세상이 벽처럼 느껴졌다. 뛰어넘을 수도 헤쳐 나아갈 수도 없는 단단한 벽. 그런 벽에도 기대어 쉴 수 있다는 걸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벽에 기대 쉬다 보면 다시 일어날 힘이 생겼다. 하루조차 견디기 힘든데 또 하루를 견뎌낼 힘이 내게서 차오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 어김없는 반복을 겪으며 내가 배운 것은 세상이 힘든 만큼 우리도 적응하고 있다는 퍽 아픈 사실이었다. 아프지만 희망이기도 하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어제를 살아냈다면 당신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닐 테다. 겨우내 죽은 듯 앙상하던 나무가 어느 봄날 피워낸 꽃잎처럼. 슬픔도 외로움도 상처도 이겨내고 보통을 살아가는 당신이 나는 반갑고 안쓰럽고 고맙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세상보다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