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평생 철들지 말고

by 이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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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장난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위험한 장난을 칠만큼 무모하지는 못해서 몰래 친구의 뒤통수를 때리거나 실수한 친구를 집요하게 놀려대는 정도였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물음에 엉뚱한 말을 꺼내며 친구들을 웃기는 게 좋았다. 한 번은 친구들과 짜고 교실의 모든 책걸상을 반대로 놓아둔 적이 있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선생님은 우리의 등을 마주했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했으나 금세 웃었다. 교실 곳곳에 웃음이 전염되었다. 만우절이었다.


만우절은 사회적으로 거짓말을 합의한 날이다. 그러나 가장 진실한 날이기도 하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거짓말은 진실인 척 남겨두는 경우가 더 많다. 장난을 말하다가 만우절을 말하는 까닭은 대부분의 장난이 거짓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지루한 편이라서 누군가의 진실 앞에서는 좀처럼 웃기가 어렵다.


반면 장난이 목적인 어떤 거짓은 악의 없는 웃음을 나누기에 충분한 도구일 때가 있다. 만우절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테다. 하지만 만우절이라고 해서 상대가 항상 장난을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교실의 모든 책걸상을 반대로 놓아둔 날. 화를 낸 선생님도 있었다. 우리의 세계를 이해해주지 않은 것 같아서 내심 섭섭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테다.


어른이란 게 그렇다. 사는 일이 장난이 아니라고 느껴져서 그런지 장난을 자주 경계한다. 나도 그때 그 선생님만큼 나이를 먹자 장난을 참는 일에 능숙해졌다. 모든 관계에는 선이 있고, 장난은 종종 선을 넘게 만든다. 선을 넘지 않으면서 장난치는 기술은 매우 어렵고 때론 귀찮아서 한쪽 눈을 감고 다니는 것처럼 장난어린 충동을 외면한다. 재미있는 농담이 생각나도 행여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혼자 삼키는 날도 더러 있다. 재미가 줄고 안도가 늘었다. 이것이 좋은 변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유 없이 살다가도 장난으로 시간을 보내는 날은 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날 때가 그렇다. 함께한 시간이 길고 서로의 사소한 사연까지 공유한 사람을 만나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처럼 어린아이가 된다. 나이를 잊고 진종일 유치한 장난을 주고받는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가 그 쓸데없는 장난에 열심인 이유는 서로를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름보다 별명이 익숙하다. 사소한 습관이 곧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과장하며 놀린다. 친구가 어디 가서 설운 일을 당하면 자기가 더 화낸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분노의 방향이 그 친구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누가 울면 ‘너 우냐?’ 놀리다가도 쓰윽 고갤 돌려 눈물을 훔친다.


친구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보다 보상을 요구하다가 겨우 술에 취해서야 진짜로 축하한다고, 고생 많았다고, 했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한다. 다시 안 볼 것처럼 싸우다가도 다시 안 보고는 못 살 것처럼 서둘러 먼저 연락한다. 그렇게 어린 날의 나와 너를 아는 우리는, 우리가 처음 맺은 대로 우리만의 방식으로 말하고, 장난하고, 마음을 잇는다.


오래된 친구 앞에서 철든 어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갑갑한 세상의 구원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지는 어른으로 살되, 서로에게는 철없는 친구로 남았으면 한다. 어느 해사한 봄날 찾아온 설렘처럼. 대책 없이 말갛고 순수하게. 우리는 평생 서로 앞에서 철들지 말고 정만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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