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여전히 당신의 슬픔을 알지는 못하지만 나의 슬픔이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압니다. 소중한 사람을 향한 마음은 누구라도 그러하듯 섣부른 위로라도 무작정 전해봅니다. 세상 가장 무용한 일이라 하여도 최선을 다해 당신을 향해봅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할 것이다. 유난히 사회 공기가 무거웠던 그해 봄, 모바일 콘텐츠 제작을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단순하고 따뜻한 콘텐츠이길 바랐다. '착하게 굴면 착하게 대해주지 않을까.' '다정한 사람 곁에는 항상 다정한 사람이 있으니 나도 그런 콘텐츠를 만들고 그런 글을 쓰면 누군가 안아주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하여간 타인을 위로하고 싶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봄이었다.
그렇게 만든 콘텐츠에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이름을 붙였다. 매일 아침 여덟시, 다정하고 따뜻한 말을 문자처럼 전했다. 하루하루 따뜻한 말을 전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한 줄짜리 문장을 쓰는 일은 그땐 하도 쉬워서 한 달 치를 하루에 몰아서 쓰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 덕분이라는 말이 내 앞에 쌓여갔다. 구독자가 만 명이 넘었다. 더는 가벼운 콘텐츠를 만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 그 즈음부터 주변 사람들과 작별을 시작했던 것 같다.
글을 모르고 글을 썼고 배운 적 없는 것들로 주변을 채우다 돌아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 틈이 많았다. 외로웠고 서글펐지만 무엇보다 잘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이미 두어 번 작은 성공과 작은 실패를 맛 본 뒤라서 조바심이 낫는지도 모른다. 1년을 연재했다. 중간에 한 업체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때 나는 부자였다. 웃고 밥 먹고 잠드는 평범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조그마한 시련들이 지나갔고 그러는 동안 손에 쥐고 있던 것들도 놓쳐 버리고 말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고 더는 새로운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때에 다시 그것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과거의 나에게 위로를 받았다. 좋은 글이라서가 아니고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나를 포기하지 않던 시절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다녀가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 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모난 곳도 없었고 모진 말도 하지 않았다. 현실의 나는 까맣게 타들어가도 그곳에서 만큼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했고 불안했으며 답답한 적도 더러 있었으나 힘들지는 않았다. '어떤 말을 쓰면 나를 읽는 사람들이 반길까' '그들에게는 지금 어떤 말이 필요할까' 고민하던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 사람을 향했다.
올해 봄, 구독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꺼내든 콘텐츠도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예전처럼 한 줄 원고를 보낼 수는 없으니 긴 문장에 따뜻한 말 한마디를 담아 《한마디》라는 이름으로 발행했다. 글은 길어지고 제목은 짧아진 셈이다. 그때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는데, 적어도 글 쓰며 사는 동안에는 이 한마디라는 콘텐츠를 놓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형태가 달라지고 읽는 사람이 사라지고 표현법이 변해도 사람을 향한 따뜻한 한마디만큼은 내내 한 손에 쥐고 살기로 한 것이다.
한 가지 주제가 한 창작자에게 오래 머문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멋지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운명이라기에는 나와 어울리는 작품이 아니다. 나는 살아오며 마주한 사람들에게 가시 막힌 말로 상처 준 적이 많다. 사과한 적도 있고 그러지 않은 적도 있다. 현실의 나는 다정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으며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다. 울긋불긋 화도 잘 낸다. 객관적이지도 못할 거면서 늘 객관적인 척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을 따져 드는 버릇도 있어서 냉정하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무엇보다 누군가 위로하는 일을 피곤해하거나 부담스러워 한 적이 적지 않다. 그런 사람이 따뜻한 말을 전해준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안간힘을 내어 따뜻한 말을 지었다. 마치 지나온 실수와 잘못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집착이었다. 그 사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는 내게 가장 익숙한 주제가 되었다. 이제는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 넘어 쓰는 《한마디》는 과연 어떤 글일까.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가진 힘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전쟁 같은 하루도 있고, 눈물이 댐의 방류처럼 터지는 하루도 있다. 주변에는 고마운 사람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다. 어떤 하루건 주변에 누가 있건 모든 사이에는 말이 오간다. 하지만 사랑하고 칭찬하고 아끼며 용기를 복 돋는 말들은 너무 흔해서 흔하게 들을 수가 없다. 대신 촌스럽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낯간지럽지 않고 무엇보다 유용한 말들로 소통한다.
큰 슬픔은 위로받고 큰 아픔은 치료를 받지만, 작은 슬픔과 작은 아픔과 작은 위태로움은 적당히 외면할 줄 알아야 성숙한 어른이라는 이상한 편견도 있다. 그래서 작은 슬픔과 작은 아픔과 작은 위태로움을 응원하고 위로할 따뜻한 한마디를 나는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하찮고 누군가에게는 지겨울지 몰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리고 도움 받은 한 사람이 따뜻한 말로 다른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내가 글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믿는다. 지금 내가 가진 능력과 운과 경험과 환경 안에서는 그보다 더 높고 크고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당.슬.알.못을 세상에 꺼낸 이유다.
원고를 모아 책을 만드는 일은 해보았으나 연재 콘텐츠를 책의 형식으로 담는 일은 처음이었다. 이토록 다른 일이라는 것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 브런치북은 네이버포스트에서 연재한 《따뜻한 말 한마디》와 《일단연재》 1, 2, 3호에서 발행한 《한마디》의 원고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긴 시간을 담은 작품이라서 그런지 글마다 제법 성격이 달랐다.
같은 정서, 다른 형식으로 쓴 원고를 단일화시키고 같은 호흡으로 맞추려고 애쓰는 한편 더 보기 좋게 담고 싶은 욕망도 한 줌은 남겨 두었다. 부족하고 서툰 문장을 고치고, 섣부른 위로의 말을 긴 시간 마주하며 치열하게 점검하다 보니 긴 잠이 그립기도 하였다. 이 책이 누구에게 어떤 계절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게 될지 모른다. 다만 잠이 그리운 날의 긴 잠 같은 책으로 남기를 끝내 소망한다. 그리고 긴 잠에서 깨어나면 한때의 우리를 서로가 안아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