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재능과 자격
엄마가 친구분과 통화를 하시다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조언해줄 수 없겠니?”
내가 하려는 일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하나도 없을 때 그 고민을 나는 조금 안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할 때 그 막막함 앞에서, 그 터질듯한 답답함 앞에서, 방황하던 나는, 길 가는 사람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그래서 엄마 친구 딸의 고민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네.”
엄마 친구 딸은 중학생이고, 웹툰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 친구는 웹툰 작가를 꿈꾸는 딸이 잘되면 좋겠지만, 잘되지 않으면 평범하게 살기도 어려울 거라며 걱정이라고 했다. 평범을 오랜 목표로 둔 내게는 반면교사의 예를 설명해 줄 자격은 충분했으나 가진 말이 별로 없었다. 두뇌를 풀가동해서 전서구··· 아니, 엄마에게 조언이 되지 않을 몇 마디를 전했다.
진심으로 하고 싶어 한다면 얼마간 해보도록 지원해주는 게 어떻겠냐는 말. 나이가 어리니 위험 부담이 적은 지금 해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말. 그것을 전하고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문득 궁금했다. 나는 무슨 재능을 믿고 글쓰기를 시작했을까.
‘예체능은 재능이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줄곧 듣던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재능의 유무를 어떻게 따질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의문은 여전하다. 십여 년간 글을 써 놓고도 글쓰기에 필요한 재능을 알지 못하는 나는, 작가의 기본기 하나만 간신히 안다. 작가는 세상을 텍스트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언젠가 휴대전화가 가진 신기한 기능을 본 적이 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식물을 찍으면 식물의 정보가 나오는 영상. 또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져다 대니 음악의 정보가 나오는 광고도 기억난다. 그 기능은 사람으로 치자면 시각이나 청각을 언어로 변환하는 능력이라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작가가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물론 정보만 기술하는 수준에 그치면 작가가 될 수 없다. 그것을 믿을 법한 이야기로 만들어 낼 때 사람은 작가로 태어난다.
일테면 매운 음식을 먹고 ‘맵다’는 반응에 그치지 않고 ‘이것은 내 혀를 바쁘게 만드는 관능의 맛’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나아가 음식에 담긴 기억, 재료에 대한 정보, 음식을 만든 요리사의 매운 하루를 상상해 덧붙인다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이 세상의 여백과 행간, 그사이에 숨은 무언가를 언어화하는 작가의 기본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기만 습득하면, 재능이 없더라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재능을 넘어서는 욕망이 있다면 말이다. 재능은 욕망에서 나오고, 욕망은 애정에서 나온다. 정말 좋아하면 말려도 하게 되고, 하다 보면 잘하게 된다. 간혹 그것이 불가능한 분야가 있기는 하나 적어도 글쓰기는 아니다. 많이 쓰면 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잘 쓰는 사람이 되고 나면 그 이유가 재능 때문인지 노력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세상일이 대체로 비슷하다. 하고 싶다거나 해야 하는 일이라면 시작 무렵에 재능을 확인하려는 노력보다 그 일을 하며 필요한 재능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체가 아닌 지엽적인 부분이라도 재능을 발견하면 그것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일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지속과 성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재능이나 잠재력처럼 ‘아직 발휘되지 않은 힘’을 미리 점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일 것이다. 다만 우리는 내일 죽을 수도 있고 완벽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할 거라면 지금 하고, 계속할 거라면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 힘을 쏟는 게 이득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한 번. 그래서 조심하기보다는. 그래서 절실한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글쓰기를 시작할 때 재능보다 자격을 고민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보다 ‘내가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었다.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고, 강연 빼고는 작가를 본 적도 없다 보니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일인 줄 알았다. 만일 ‘같이 밥묵고!’ ‘싸우나도 가고!’ 할 만한 작가가 주변에 있었더라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지금보다 조금 더 흔한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작가에게는 표현과 소통의 욕망이 있다. 그리고 내가 배운 무언가와 표현하고 싶은 어떤 것을 세상에 꺼내 놓는 일은,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겠다는 목표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의지에 가깝다. 이를 추동하는 힘은 세상 또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그러면 그 애정은 어느 정도 마음이어야 할까. 평소 가방에서 쓰레기가 자주 나오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가방에서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은 어디선가 간식을 먹거나 새 제품을 뜯었는데 그때 나온 비닐이나 포장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않고 가방에 넣어두었다는 의미다. 그것은 사소한 선의나 윤리에 불과한 일이기는 하나, 세상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작은 애정이 없다면 하지 못할 일이다. 그것을 해낼 정도면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에 글을 꺼내 놓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수줍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재능이 하나 있다. 막힌 변기를 좀 뚫을 줄 안다. 이게 쉬운 일 같지만 정말 쉽다. 그래도 누군가는 어려워할 테니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나도 힘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범인이 아닐 때다.
타인이 벌인 중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것. 그 일이 변기에 발생한 일이라면 얼마나 큰일인지 지금 당장 큰일을 보지 않은 사람도 알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그 큰일을 벌여놓아도 나는 기꺼이 해결한다. 그 힘은 당연히 가족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이 정도면 나에게 가족을 사랑할 재능 정도는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알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