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계절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놀라울 것 같다.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나 납득까지는 좀 곤란하다.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낙엽 쓰는 일을 하도 오래 해서 고된 기억밖에 없거나, 가을에 이별한 경험이 뇌리에 남아 있거나, 하필 가을에 장사가 안되는 직업을 가졌거나 하는 식의 우연하고도 개인적인 경험 때문일 거라고 짐작한다.
가을은 포근하다. 날씨도 그렇고 풍경도 그렇다. 어떤 빛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할 때가 있는데 가을빛이 특히 그렇다. 따스하고 풍요로운 빛이 시선에 닿으면 가을을 살고 있다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가을은 포근하고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그렇다고 한 가지 얼굴만 가진 심심한 계절은 아니다. 쓸쓸하고도 허망한 분위기도 일품이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이용 아저씨를 슬프게 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있고, 바바리코트를 입고 분위기 잡는 근사한 가을 사람이 있고, 노랗고 붉은 낙엽의 낙화를 볼 수 있다. 사물로 따지자면 무드 등이 따로 없는 것이다.
가을은 산행도 특별하다. 가을 산행하면 떠오르는 따사로운 기억이 하나 있다. 엄마가 친구분과 함께 등산을 하신 적이 있다. 엄마 친구분이 화장실에 가셨다가 그만 등산화를 영 좋지 못한 곳에 빠뜨리고 말았다. 당황한 엄마와 친구분이 옆에 있던 매점으로 달려갔다. 난처한 얼굴로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지만, 매점 주인으로부터 “그건 절대 건질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절망적인 답변을 들어야 했다. 실망하고 있던 그때 가지치기를 하던 인부 아저씨들이 나섰다. 삼삼오오 영차영차 힘을 내어 가지 칠 때 쓰는 기다란 전문 기구까지 동원하여 신발을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엄마와 친구분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커피와 과일을 선물했다는 훈훈하고도 따뜻한 이 사연은 가을이 얼마나 포근한 계절인지를 다시 한번 증명하는 사연이다.
포근하면서도 풍류가 있는 가을의 백미는 역시 가을 노래일 것이다. 김광석이 불렀고, 제이레빗이 리메이크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아는가. 가사에 ‘가을’은 나오지 않지만 가을바람이 저기 막 불어오는 것 같고 엉덩이가 간질간질해지는 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이 노래는 가을이 제철이다.
가을 문턱마다 떠오르는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 이 노래도 서영은 버전의 리메이크곡이 존재한다) 듣고 있으면 뭔가 통기타를 둘러매고 들판에 둘러앉아 막걸리, 아니, 담소를 나누고 싶어진다. 이처럼 가을 담은 노래들은 하나 같이 여유롭고 깔끔하며 포근하다는 사실은, 가을이 가진 풍요로움을 대변한다. 더해, 유난히 계절 명곡이 많아서 리메이크도 잦고 전 세대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도 가을을 부른 노래만의 자랑이다.
가을 노래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양희은이 불렀고, 아이유가 리메이크한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가 있다. 은은한 가을 풍경을 담은 이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가을 한복판에서 글 쓰는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지난 새벽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어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었다. 삶이 늘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한탄하다 잠이 들었고 새벽에 눈을 떴다. 날이 밝고 좀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산책을 나갔다. 이른 시간이라서 추울 줄 알았는데 햇볕이 제법 넉넉했다. 숨을 습- 하고 들이마시고 후- 하고 내뱉으니 가슴이 저릿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눈에 좋은 풍경은 하나도 놓치기 아까워 먼 곳까지 둘러보았다. 그렇게 산책로를 따라 삼십 분쯤 걷다 보니, 솜같은 바람이 슬쩍, 지나가며 땀을 닦아주는데, 가을은 정말 친절한 계절이구나 싶었다. 이러니 가을, 그중에서도 가을 아침을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밤새 심란하던 마음이 고작 가을 아침을 맞이한다는 이유만으로 좋아지다니. 괴로움이 뭉근히 사라지고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이쯤이면 가을 아침에는 굉장히 샤머니즘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실제 심리학에서는 내면의 빛을 회복하고 싶을 때 노란색이 끌릴 수 있다고 한다. 오늘은 노오란 단풍을 올해 들어 처음 보았는데 내가 기분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을 찬사를 늘어놓다 보니 내가 정말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유난히 여름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유독 여름처럼 푹푹 처지고 지치는 일상이 반복되어서 그런지, 가을이 오면 선물 받는 기분도 든다. 그래서 가을이 온다는 조짐만 보여도 임영웅을 반기는 고모처럼 마음이 달뜬다.
좋아하는 계절에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어떨까. 가을의 글쓰기는 내가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가장 애착을 갖는 순간이다. 돌아 보면 여름에는 이렇다할 결과물을 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만일 내가 여름에 원고를 공개한다면 그것은 봄에 써둔 글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내게 여름은 일이 힘든 계절이다. 그렇다 보니 가을부터 일의 한 시절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한 해의 시작이 1월이지만, 나는 가을부터 쓰는 사람이 되어 다음 해 봄까지 ‘쓰는 일’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가을은 내가 깨어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계절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한 해에 한 철은, 행복을 미리 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누구에게나 한 계절, 그런 계절이 있기를. 나를 채워주고 용서해주는, 흔하고 반가운 한 계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