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위한 준비
글쓰기를 위한 첫 번째 준비는 아무래도 마음이다. 세상의 일이 대체로 그렇다. 내키지 않거나 그것에 집중할 수 없으면 일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글은, 언어를 다루는 일이라서, 내 마음에 지나가는 언어가 오염되지 않아야 한다. 작업이 수월한 마음 상태는 ‘쓰는 사람’마다 다르다. 슬픔을 질료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고, 분노할 때 비로소 쓸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도 있다. 나는 마음이 고요하지 않으면 작업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상태로 따지자면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선호한다.
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나는 예방에 진심인 사람으로서 아무렇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오한이나 몸살 기운이 느껴지면, 얼른 카디건을 꺼내 입거나 실내 온도를 높이고, 속이 좋지 않으면 금식을 한다. 그러다 예방에 실패하면 서둘러 병원을 가고, 약을 먹고, 의사와 약사가 전해준 주의사항을 기억하고, 각종 미디어에서 민간요법을 찾아본다. 고통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의도다.
한때는 마음을 헤집어 놓을 법한 것들로부터 도망을 다니느라 바빴다. 글을 쓰기 위한 도망인데 정작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 다짐한 것이 고립이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 나를 가둬놓기로 한 것이다. 눈과 귀를 닫자 외부의 소란이 잦아들기 시작했는데,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사람을 피하다 보니 글에 담겨야 할 감정이 메마른 것이다. 내가 사람인지 글 자판기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모든 글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배우고 고립을 그만두었다.
평범한 생활에서도 마음은 자주 탈이 났다. 누군가 나 몰래 집으로 좌절과 실망을 정기 구독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만큼 자주 아프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나는 매일 산책을 나갔다. 아침 낮 오후 저녁 밤 새벽 언제고 밖에 나가 걸었다. 함께 살던 가족들은 어디에 가느냐 내게 물었고, 내 대답은 계절마다 달랐다.
봄이나 가을에는 날이 좋아 거리를 관찰하러 나간다 했고, 여름과 겨울에는 얼마나 더운지, 얼마나 추운지 느껴보고 와야겠다고 말했다. 전부 글쓰기에 필요한 양분이라면서. 걸음이 가진 신기한 재주를 배운 것이 그때였다. 걷다 보면 잊게 되고, 잊다 보면 다시 새로운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 왜 바퀴가 둥근지. 산책로가 동그랗게 이어져 있는지. 그 이유를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가 그 시절을 용서하는 이유다.
한참 걷다 집에 돌아오면 졸음이 쏟아졌다. 다행인 것은 하루 종일 걷고 나서 쏟아지는 졸음이 싫지 않았다는 점이다. 잠이 오는 졸음과 일상을 등지는 졸음은 다르다. 산책 후 졸음은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졸음이어서 좋았다. 씻고 누우면 세상의 평화가 찾아온 것처럼 마음이 충만해졌지만, 쉬이 잠들지는 못했다. 하루 치 원고 분량을 채우지 못했다는 자책과 불안 때문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뭐라도 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 잠이 올 것 같았다. 그렇게 쓴 글이 제법 많은데, 전부 의미 없는 소리로 남았다. 불안하고 심란할 때 쓰는 글은 어딘가 망가진 글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물론 그러한 글도 쓸모는 있다).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면 글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 해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자주 다투어서 난감할 때가 많다. 나는 어쩌지 못하고, 해결은 시간이 해준다. 마음도 한때이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이든 감정의 주인이 관심을 주지 않으면 금세 흥미를 잃고 사라진다. 따라서 나는 마음이 좋지 않을 때 글을 써야 한다면 내게 시간을 내주려고 노력한다. 일테면 두 시간 안에 끝내야 하면 적어도 한 시간쯤 내준다. 그 시간 동안 최대한 내 감정에 무심해지려고 애쓴다. 딴청을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과 다툰 어제도 그랬다. 일이 남아서 서둘러 시간을 낭비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누워 벽지 무늬를 바라보다 읽은 책을 또 읽었다. 청소기를 돌리기에는 시간이 늦었고, 마땅히 할 게 없어 창문을 서성이기도 했다. 맞은편 원룸에 사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가 조금 섬뜩해 할 것 같아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휴대전화로 기사를 읽고, 웹툰을 보았다. 보다 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고, 허둥대는 동안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니 이제 글을 써야겠다 싶었다. 의무가 아닌 의지가 고개를 든 것이다. 완전히 회복된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글을 쓸 수 있는 정도 되어서 의자에 앉았다. 이 글의 초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긴 호흡의 작업을 할 적마다 주변 사람과 마찰 없이 지내려고 신경을 쓴다. 그럼에도 종종 다툼이 일어난다. 내 쪽이든 상대 쪽이든 아니면 만남 자체가 원인이든 가까운 사람과 한 번씩 서로의 성난 마음을 확인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격리를 선택한다. 우리를 잠시 멈추고, 각자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도배할 때 벽지에 바른 풀이 마르길 기다리는 것처럼 타인과의 다툼과 내 마음의 평온 사이에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자유로워지는데 나는 그때를 나를 만나도 되는 신호라고 여긴다.
비로소 나를 만나는 때에는 안 좋은 일을 잊었을 때가 아니라 잘잘못 따지기를 멈추고, 상대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기로 다짐했을 때가 많았다. 내 마음의 회복은 타인의 반응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줄 때 시작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