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간

글쓰기의 목표

by 이학민

두 해를 지나오며 일상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술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멀리서 안부를 묻는 일상에 적응하다 보니 집에서 아빠와 술을 마시는 날이 부쩍 늘었다.


목수로 일하시는 아빠는 저녁마다 반주를 즐기며 하루를 닫는 분이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고, 요즘에는 한 달 두어 번쯤 내 잔에도 술을 채운다. 원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서는 술을 먹지 않겠다는 고집이 내게 있었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습관이 되면 일상이 허물어질 수 있겠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출근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유롭게 지낼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표가 없기 때문에 일상에 의미 있는 일정을 넣어두려고 애쓴다. 월요일 아침 늦잠을 잔다거나 평일에 유희를 목적으로 외출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이것은 보편의 삶에 속하려는 나의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외출과 모임을 극도로 자제하는 시대가 찾아오고, 나는 자연스럽게 집술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모임이 뜸해지긴 했으나 술친구들의 목소리도 내가 집술을 시작하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 아이를 하나둘 키우는 친구들은 술을 마실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내 아이와 같이 술 한잔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자식과 술을 마시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모르지만, 아빠와 집에서 술을 마실 때의 기분은 조금 안다. 첫째. 편하다. 둘째. 소란스럽지 않다. 셋째. 안주의 맛을 되찾았다. 이중 가장 반가운 것은 안주의 맛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을 마실 때는 안주를 고려하지 않았다. 주로 가깝거나 조용한 술집에 가서 남들이 즐겨 찾는 흔한 안주를 시킬 때가 많았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던 대학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안주를 찾아 술집을 여행하는 취미가 있었다.


학교 앞 술집에서 팔던 커다란 삼치구이는 와사비를 넣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 소주와 잘 어울렸다. 한참 막창의 매력에 빠진 시절에는 막창과 소주를 마신 후 다른 식당에 가서 또 막창을 사 먹기도 했다. 맛은 식당마다 달라서 더 맛있는 식당을 찾으면 뿌듯해했다. 발품으로 찾은 한 실내 포장마차는 단골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오징어 초무침, 얼큰이 국수, 양념 고갈비 같은 안주로 술을 마시며 하루를 닫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과 장소가 달라지고부터는 더는 안주를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집에서는 다양한 안주를 준비한다. 광어회와 양장피는 우리 집 술상에 종종 찾아오는 대표 안주고, 두부김치나 김치전은 자주 찾는 생활 안주다. 육회나 주꾸미 볶음은 별미로 등장하고, 찬 바람이 불면 과메기나 대하를 먹는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 삼겹살도 우리 집 술상의 단골손님이다. 가끔 ‘소’님을 안주로 초대하면 우리는 친절하게 음미한다. 아는 맛이 좋아하는 맛으로 변하는 데에는 소중한 사람과의 술자리만큼 확실한 조미료가 없다는 사실을 배우는 요즘이다.


나는 소주를 주로 마시지만, 아빠의 주종은 구기자 주다. 구기자 주는 마트에서도 팔지만, 가끔은 함께 차를 타고 청양에 가서 상자째 구입할 때도 있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향이 강하지 않아 나도 가끔 마신다. 특별한 날에는 서울의 밤이나 소곡주처럼 자주 마시지 않는 술을 사서 집으로 간다. 어떤 술을 마시든 어떤 안주를 곁들이든 목표는 하나다. 좋은 시간 보내기.


14.png Ⓒ 이학민


한 가수가 인터뷰를 통해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기 위해 일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특별히 애주가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 행복을 느낀다. 자주 찾아오는 순간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보낸 이들에게 애착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만날 때면 ‘이번에도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야지’ 다짐 아닌 다짐을 한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나의 목표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쓰는 사람’으로 살아오며 알려지지 않은 작품 몇 개를 세상에 꺼내 놓았다. 그것은 읽는 사람이 가진 시간의 손목을 잡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시간을 잡아두는 일인 만큼 아무거나 꺼내 놓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세상에는 글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 아니, 글보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거의 없다고 믿는다.


가까운 사람의 낯빛이 언제 밝아지고 언제 어두워지는지. 고단한 밥벌이와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의 일상이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질병으로 앓고 있는지. 이처럼 중요한 고민 앞에서 글쓰기는 사소한 일이 된다. 그 사소함에 기꺼이 시간을 내준 사람을 위해 쓰는 사람이 할 일은 단 하나. 읽는 사람을 잠시라도 만족시킬 것.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목표는 가질 수 있다.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 중 최소 몇 사람은 읽는 동안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그것을 기대하며 쓰는 순간은 내게도 좋은 시간이다. 언제나 글을 쓰며 바란다. 시차는 다르지만, 우리가 글로 만나는 순간이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길.


글을 쓸 때나 술을 마실 때나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내려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명한 사실이지만, 좋은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사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의 끝에서 터져 나온 허무함이, 평온하던 마음을 함부로 허적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안주나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술 한잔처럼 사소한 평화를 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으로 우리는 잠시 현실을 잊고, 그 잊음으로 다시 괜찮은 일상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쓰고 싶던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대단한 목표는 없다. 사소한 평화를 주는 무언가를 쓰고 싶다. 필요한 순간, 펼쳐 든 나의 책이 이제 쉬어도 된다는 신호처럼 들렸으면 한다. 그 신호가 들려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스스로 말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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