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하는 마음 1

글쓰기 플랫폼과 연재

by 이학민

나의 글쓰기는 9할이 연재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가장 꾸준히 한 일이 연재이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앱과 웹소설 플랫폼,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글쓰기 플랫폼, 블로그, SNS. 그리고 메일링서비스까지 다양한 곳에서 글과 콘텐츠를 연재했다. 독립출판을 제외하면 작품을 발표한 것도 거의 연재를 통해서였다. 이쯤이면 연재 노동자의 일이 익숙할 만도 한데, 십 년을 해놓고도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든다. 내게 연재란 여전히 어렵고도 흥미로운 모험이다.



플랫폼 연재라는 모험


글을 쓰려면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글을 쓴 다음에는? 글을 공개할 지면이 필요하다. 쓰기도 전에 청탁을 받는 작가가 아니라면 지면은 직접 찾아야 한다. 그런데 물성을 가진 지면은 전체 지면에 비해 극도로 적다. 현실을 인정한다면 결심을 해야 한다. 한정된 세계에서 무한의 세계로 떠나는 결심. 누구나 글과 콘텐츠를 올릴 수 있는 온라인 지면을 활용하는 거다. 활용보다는 활동이 더 적확한 이 모험은 무한한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한 플랫폼에서 단문 콘텐츠를 연재했어요. 카드 뉴스와 유사한 형식인데, 정보 대신 메시지와 감성을 담았어요. 일 년 넘게 연재하며 콘텐츠 종수를 늘려갔더니 어느 날 메일이 왔어요. 정식 연재를 제안한 거죠. 연이어 다른 연재처에서도 제안을 받았어요. 출간 제의도 왔고요. 비록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플랫폼 연재의 힘을 실감했죠.”


모험에도 동료가 있듯 플랫폼 연재를 하다 보면 다양한 동료를 만난다. 연재처 동료들이 강의나 출간의 기회를 얻은 사례는 수없이 보았다. 글을 서랍에 넣어두었다면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연재가 기회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주목받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다만 플랫폼 연재는 연재 분량만큼 글이 쌓이는 게 특징이다. 쌓인 원고가 언제 어떻게 빛날지 아직은 모른다. 플랫폼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플랫폼 관리하기


카페 영업의 시작과 끝을 본 적이 있다. 개업을 앞둔 카페에서 실내 공사 뒷정리와 가구 배치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해봤고,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마감을 도와주기도 했다. 개업과 마감 사이의 일들은 대체로 손이 많이 갔다. 매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단순히 청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새것 같은 장소를 바라는 듯했다. 플랫폼 연재 노동자에게도 비슷한 욕심이 있다.


“제가 작품을 올려두는 플랫폼이나 채널은 약속 장소라고 생각해요. 대면이 없는 온라인 지면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독자를 만나니까요. 가능한 잘 관리하고 싶죠.”


영업을 준비하는 매장처럼 플랫폼을 잘 관리하겠다는 다짐은, 이따금 찾아오는 게으름과 회의에 무너지기도 한다. 다행히 플랫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제든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런데 의지와 관계 없이 관리에 애먹을 때가 있다. 한 번은 간판 없이 영업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용자 이름을 바꾸려다 실수로 공란으로 바꿨는데, 다시 바꾸려면 2주를 기다려야 한단다. 이름과 작품이 곧 간판인 창작자에게 2주는 긴 시간이었다. 더 황당한 일은 이후에 벌어졌다. 누군가 내 이름을 훔쳐 간 것이다.


“사칭을 당한 거죠. 제 게시물을 그대로 복제해서 자기 피드를 채운 거예요. 사용자 이름조차 제 이름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누가 봐도 제 계정처럼. 얼른 신고를 했는데 조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본사에 메일을 보냈어요. 파파고의 도움을 받았죠. 몇 번이나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사칭 계정이 차단되었어요.”


11.png Ⓒ 이학민



권리와 보호


창작의 세계에도 엄연히 남의 것이 있다. 모방을 통해 성장하고, 다른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거나, 오마주 또는 패러디를 해도 사정은 같다. 그리고 이것을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로 보장한다. 다만 누군가 법을 어겨도 발견하지 못하면 신고를 할 수 없다. 도둑을 맞고도 도둑맞은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가끔 제 콘텐츠를 검색해 보면 출처가 없거나 제 이름을 자르고 올려둔 것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불펌의 경우’는 아예 검색조차 할 수 없을 때가 많아요. 속상한 일이죠.”


글을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이미지가 필요하다. 나는 사진과 일러스트는 물론 여러 디자인 자료를 활용하는데 그때마다 그것의 저작자가 누군지, 사용은 어디까지 허용했는지 곰곰 살펴본다. 그리고 꼼꼼하게 저작권자와 출처를 병기하려고 노력한다. 타인의 작품을 무단으로 게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적어도 창작자라는 카테고리로 함께 분류되는 사람이라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것을 가져가면 얼굴을 붉히면서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다 쓰면 안 되니까요. 노력은 하는데 정확하게 출처를 남겼나, 의심이 들 때는 있어요. 그래서 인용은 최소화하려는 편이에요.”


플랫폼의 세계에서는 남의 것을 탐하는 업체도 많다. 그들의 목적은 광고다. 내게도 그런 메시지가 자주 온다. 돈을 줄 테니 블로그나 SNS 계정을 판매하라는 업체도 있고, 광고 원고를 줄 테니 그대로 올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요청을 스팸으로 분류한다. 플랫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브런치는 꽤 청정한 편이다. 쪽지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 무작위 메일은 온다.


“취준생을 위한 취업 강의를 만든다며 제의가 왔어요. 제가 브런치에 올린 글을 보았다면 오지 않았을 제의였죠. 메일을 지우면서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어요. 제의 메일이 와서 반가운 마음에 열었는데 저에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럴 때마다 플랫폼 연재에 회의를 느끼기도 해요.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독자만 바라보고 글을 쓰고 싶어지죠.”




애정과 관심


그러면 플랫폼 관리나 부차적인 업무를 치우고, 오직 독자에게 글을 전달하는 역할만 한다면 평온할까. 아닐 것이다. 가끔은 일부 독자에게서 날 선 반응이 나오기도 하니까.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할 때 악플에 시달린 경험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반대로’라고 표기한 것을, 담당자분이 메인에 배치하는 과정에서 ‘거꾸로’라고 적어둔 적이 있어요. 세로 형식의 콘텐츠였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본 후에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길 바랐어요. 그러면 반대 의미가 나올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거꾸로’ 읽으라고 메인에 쓰여 있으니 의미가 달라진 거죠.”


댓글 창에는 욕설과 조롱이 난무했다. 그중에는 축제라도 시작된 양 비난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가능하다면 찾아가서 혼을 내주고 싶었다. 다만 ‘거꾸로’라는 말을 보고 휴대전화를 거꾸로 들어 보았다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조금 있다.


“단지 소통의 문제가 있었던 것뿐인데, 그걸 본 사람들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화를 내고 조롱을 하더라고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데 그때는 제법 심각했죠. 물론 화풀이를 하려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지금도 좋아하지 않아요.”


악플도 관심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악플은 악플일 뿐이다. 애정이 있으니 쓴소리를 한다며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는데, 문제는 애정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좋은 소리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존중을 기반으로 반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플랫폼과 연재 노동자를 잃게 될 것이다.


“잊고 지낸 친구에게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힘든 시기였는데 제 연재 글을 보고 도움이 되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더 고맙죠. 그러한 반응이 없었더라면 연재를 계속해나가기 어려웠을 테니까요.”


연재 초기와 달리 지금은 악플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무관심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기 때문이다. 더해, 어딘가엔 나의 콘텐츠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재는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연재 노동자와 구독자. 그리고 플랫폼이 함께 만들어간다.



다음 편에 계속.



*이 원고는 출판사 제철소의 인터뷰집 ‘일하는 마음 시리즈’의 형식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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