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산책

글쓰기라는 생활

by 이학민

1.


조금만 더 가면 산책로다.


육교 너머 화장품 가게와 편의점을 지나면 빵집이 하나 나온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때도 있는데 오늘은 제법 한산하다. ‘여기 식빵은 내놓자마자 금방 동이 나니 시간을 잘 맞춰 와야 해’. 빵집을 지날 적마다 자주 듣는 말이다. 오늘도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뒤편으로 걸어간다. 빵집 뒤편에 있는 술집은 불이 꺼져 있다. 같은 건물 닭갈비 집 주인은 문을 열어둔 채 청소를 하고, 맞은편 카페의 바리스타는 고객이 내민 카드를 받는다. 실내 노동자로 살아서 좀처럼 사람 만날 일 없는 나는 오전 산책을 나올 때마다 번화가를 가로지른다. 타인의 활기는 뿌듯한 하루를 보내는 데에 꽤 도움이 된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산책로다.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부터 내가 글쓰기만큼 자주 해온 일이 산책이다. 시도 때도 없이 걷는다. 걷는 게 직업인 사람처럼.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오늘도 벌써 두 시간을 걸었다. 걷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숨이 가파르고 다리가 좀 아프다는 것 말고는 남는 것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보통 다 이렇다.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선 지 어언 십 년이 다 되어간다. 이쯤이면 무언가를 남겼거나 이루었을 거라고. 하다못해 내일을 걱정하는 처지는 아닐 거라 예상했는데 손에 쥔 것이 별로 없다. 이름난 작가는 되지 못했고, 간신히, 쓰는 사람으로 산다.


사람들은 글을 잘 쓰면 좋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회와 연결된다며 여기저기서 글쓰기를 유혹한다. 거짓은 아니다.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보여주지 않으면 기회를 얻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글을 쓸 줄 안다면. 아니, 잘 쓴다면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생긴다. 글은 소통과 표현의 도구이며 거의 모든 업무는 문자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잘만 쓰면 돈도 된다. 마음 안의 전쟁을 멈추게 하고,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어주는 것도 글이다. 연애에도 도움이 된다, 고 믿는다면 그것만은 오해라고 말해 본다. 연애는 편지로 하는 게 아니다. 글은 글이고 사랑은 사랑이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고 했다. 작업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사거리를 건너면 개천이 나오고 그 옆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러려면 산책로 뒤편으로 돌아와야 해서 삼십 분쯤 더 걸릴 텐데. 선택의 순간마다 미래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책이 없거든. 나는 사거리를 건너 개천을 향해 걷는다. 이윽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돌아가긴 늦은 것 같고, 빗방울은 우리 집 강아지 제리의 재채기처럼 갸냘프니 계속 걸어보기로 한다. 빗물은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있다.* 이제 정말, 조금만 더 가면 산책로다.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 ⟨바람이 불어⟩에서 참조.



24-1.png Ⓒ 이학민



2.


집을 나와 원룸에서 지낸 지 두 해가 지나간다. 작업실로 구한 원룸은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어서 집과 작업실을 자주 오간다. 오후에 작업실을 나서면 포크레인과 자재와 인부들을 만난다. 문밖만 가면 남의 일터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일터가 아닌 곳은 없다. 마트나 우체국을 갈 때도, 엘리베이터에서 택배 기사를 만날 때도 매번 느낀다. 덕분에 출근 없는 나도 늘 일터에 머문다. 남의 일터에서 사치도 부린다. 오후 산책은 명백한 사치다! 일터의 사람들은 누릴 수 없는. 한낮의 볕을 맞으며 걷는 순간, 나는 부러운 사람이 된다. 이렇게 계속 사회의 규칙을 어기다가는 언젠가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한다. 그래서 공범을 만드는 일에 꽤 진심이다.


멋진 선물이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지만, 얼마든지 함께 걸어줄 수 있는 나는, 함께 걷는 친구를 ‘발동무’라 부른다. 여행을 직업처럼 여기는 발동무와의 산책은 차라리 탐험에 가깝다. 사거리를 돌아 하천 쪽으로 가볼까. 누구든 말하면 반론없이 걷기를 시작한다. 굽어진 길과 외딴 골목을 향해 거침없이 내딛다 날이 저물면 처음 보는 주점에 들어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으로 그날의 여정을 마친다.


한 번은 지인이 내가 사는 동네를 찾아왔다. 그가 개인적인 일로 얼마간 고통을 겪고 난 후였다. 무언가 큰 산을 넘은 것도 같은데 답답한 사정은 영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여름이었고, 우리는 날이 저물 때까지 제법 오래 걸었다.


발동무와 발을 맞추면 반드시 대화가 끼어든다. 발걸음 사이사이 끼어드는 우리의 말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기억이나 눈앞의 풍경과 날씨에 관해 떠든다. 그러다 잠시 말을 멈추고 오롯이 걷기에 집중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물소리, 새소리, 차 소리, 발동무의 숨소리, 신발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가 뒤섞이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내 등을 토닥여주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인이 찾아온 그날은 유독 침묵이 잦았다. 등이 얼얼할 만큼 소리가 많았다.


왜 하필 글을 쓰기로 한 거니?


글을 쓰기로 다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발동무가 내게 물었다. 나는 글쓰기가 좋고, 내게 잘 맞아서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은 조금 안다. 글쓰기가 생활이 되어야 한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실패에 무너지고, 작은 성공에 희망을 품는 생활 곳곳에 글쓰기를 두어야 한다.


여기서 ‘쓰는 사람’은 직업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쓰지 않으면 곧 죽을 것처럼 글쓰기에 매료된 존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쓰는 사람. 이유가 없어도, 글쓰기가 지겨워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다른 일을 하고 살아도, 결국 계속 글을 쓰는 사람. 그것이 생활인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


간밤에 또 비가 내린 모양이다. 아침에 가까운 새벽에 눈을 뜨자 젖은 땅이 문밖에서 나를 부른다. 비가 가고 새벽이 온 냄새는 어쩐지 그리움을 닮았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걸을 뿐이다. 걷고 걷고 또 걷다가 고양이가 울어서 고개를 돌리는데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들려온 소리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공사장 안쪽일까. 불 꺼진 상점 주차장인가. 그러고 보니 한 마리의 소리가 아니다. 밤이 두렵니. 그리워서 그러니. 어차피 대답은 듣지 못할 줄 알면서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여기가 어딘가 싶다. 똑같이 네모진 원룸 가득한 이 동네에서 나는 길을 자주 잃는다. 위험하지는 않다. 걷다 보면 날이 밝고 날이 밝으면 어딘가는 선명해질 테니까. 다만 더 오래 걷고 싶을 따름이다.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누구나 자신만의 글쓰기를 말할 수 있는 시대. 이렇게 은근슬쩍 나도 한 권을 더해 본다. 해온 일이 글쓰기 밖에 없는 9년 차 ‘쓰는 사람’이 아홉 수에 꺼내 놓는, 창작과 생활을 담은 이 이야기가 글쓰기를 다짐한 누군가에게 다정한 발동무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어딘가에서 자신을 쓰며 한 시절을 보낸 사람과 더 잘하고 싶어 애쓰는 이름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나의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길 바란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참조.



24-2.png Ⓒ 이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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