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시대

글쓰기와 자기 검열

by 이학민

“너는 편의점에 담배 사러 나온 거냐?”


현이 웃으며 강을 타박했다.


“편한 게 최고지.”


그렇게 말하는 강은 어딘가 신선 같기도 했다. 물은 물이고, 옷은 옷이고, 친구들은 반갑고, 놀림은 애정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싶은 표정. 내가 마음속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동안 강은, 외모를 가꾸거나 좋은 옷을 입는 일에 부쩍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일이 바쁘기도 하고, 둘째가 태어난 후로 출근 외에 혼자 외출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강이 신고 온 크록스 슬리퍼를 바라보다 눈길을 돌려 내 옷을 내려다보았다. 회색 트레이닝 바지와 감색 맨투맨. 작업복 차림이었다.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입는 옷을 작업복이라 한다면 나는 진종일 작업복만 입고 지내는 사람이다.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시 외출을 할 적에도 언제나 비슷한 옷을 입는다. 잠옷을 따로 두지 않아서 샤워 후 입는 옷도 작업복이다. 가끔은 생각 없이 맨투맨과 트레이닝 바지를 모두 회색으로 맞춰 입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스님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회색 옷은 뭐가 묻으면 유난히 더러워 보이니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이다.


명랑한 복장으로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형의 부탁으로 세탁소에 갔다가 옷을 받고 나오는데 뒤에서 ‘잘 가’하는 인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탁소 아저씨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길을 건너며 실실 웃다가 다음에는 정장을 입고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한때는 외출할 때마다 옷차림을 신경 쓰느라 한두 시간쯤은 거뜬히 보내곤 했다. 옷 좀 입는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매일 다른 옷을 입고 나가는 수고도 감수했다. 옷에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옷 대신 가상의 독자를 미리 신경 쓰며 자주 고민했다. ‘이걸 써도 될까’ ‘이건 좀 그런가’ 비로소 검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던 그때 내 검열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내 글이 너무 평범하다는 것. 남들처럼 먹고, 일하고, 자고, 주변 사람과 다투고, 울고 웃는 뻔한 일상을 글에 담을 때마다 특별한 일 없는 나의 글이 흰 밥처럼 심심해 보였다. 지금은 평범함이 얼마나 가치가 큰지 안다. 평범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고, 보편은 그 수가 가장 넓은 범위다. 독자를 만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인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고 산다.


두 번째, 개인적인 이야기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나의 수치나 주변 사람들의 내밀한 사연을 글로 써도 되는지 혼자 눈치를 살핀 것이다. 지금도 고민은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내린다. 써도 될까 싶을 때 그 대상이 누구든 선명한 한 사람을 아프게 할 거라는 확신이 서면 쓰기를 멈춘다. 정확하게는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쓰지 않는다. 세상에는 글쓰기보다 중요한 게 많으니까.


십 년쯤 글을 쓰며 자기 검열을 했더니 글을 공개하는 기준이 단단해졌다. 이제는 글이 가진 필요나 가치가 우선이다. 대중적 글쓰기가 목표라면 내가 쓴 글 안에 재미, 의미, 정보, 문장의 미학 중 단 한 가지는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 글 안에 그중 하나는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그것이 타인에게 필요나 가치가 있는지 따져 보는 것이 내 글을 검열하는 기준이다. 다만 전제는 있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가.


완벽한 예방은 불가능하다. 모두에게 무해한 동시에 필수적인 글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목적을 기억하고, 글이 가진 가치의 한계를 인정하고,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 같다는 현재의 판단을 믿어 본다. 그 후 내 글이 누군가의 통점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 잘못을 시인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을 반복하면 세상과 내 글의 타협점을 얼추 알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보편과 상식의 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글을 공개할 때도 자기 검열에 열중하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인간에게 더없이 자연스러운 태도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쓴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대신 행동은 보여 준다. 나는 옷을 사러 갈 때도 그런다.


9.png Ⓒ 이학민


옷을 자주 사지 않아서 낡은 옷을 입는 사람은 외출이 부담스럽다. 작업을 하거나 친구를 만날 때는 괜찮은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신경이 쓰인다. 아, 옷 좀 사둘걸. 지나간 시간을 탓하다가 중요한 만남을 앞두고 옷을 사러 가려다 또 탓한다. 아, 옷 좀 사둘걸. 옷이 없어 옷을 사러 가는 것인데 입던 옷이 허름하여 밝고 찬란한 옷가게에 들어가기 겁나는 것이다. 한 번은 타인의 시선 따위, 생각하며 당당하게 후줄근한 복장으로 옷을 사러 갔다가 옷가게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보고 달아나듯 나온 적이 있다. 거울 안에는 담배 사러 나온 백수가 서 있었다.


얼마 전 티셔츠를 사러 옷가게를 갔을 때는 조금 신경을 쓰고 갔다. 그런데 옷을 고르는 내내 혼자인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옷가게에서도 ‘제가 알아서 할게요’ 같은 분위기가 있다지만, 점원은 계속 다른 손님 곁에만 서 있는 것 아닌가. 이쯤이면 내게 한 번쯤 고개를 돌려볼 만도 한데 시선이 없었다. 하릴없이 티셔츠를 골라 갈아입고 나와서 문제의 전신 거울 앞에 섰다. 환한 옷을 입어도 나는 그대로 밤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뒤에서 점원의 목소리가 다가왔다.


“얼굴이 환하셔서 색이 잘 어울리시네요.”


거울 안에는 피해 의식이 낳은 괴물이 비비크림을 바른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항상 느끼고도 까먹지만, 나를 가장 형편없이 대하는 사람은 바로 나다. 타인은 내게 큰 관심이 없다. 알면서도 늘 낯선 척 신경 쓰다 상대가 나를 신경 쓰지 않으면 서운해하다 또 너무 신경 쓴다 싶으면 발을 빼는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주말에는 거의 일 년 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이번엔 큰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바람도 기원도 아닌 무언가를 내 손 가득 쥐여주었다.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고, 때론 갈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면 그 관심에 책임을 다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 것이다. 내가 쓰는 책이 얼마나 큰 관심을 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바람은 있다. 보는 사람도 쓰는 나도 아프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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