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공모전
축제의 밤이 저물어 갑니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공모전(이하 브런치북 공모전) 공모 마감이 다가왔네요. 수상을 꿈꾸며 수많은 밤을 보내셨을 분들께 인사를 드려봅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작업 도중 몸과 마음이 지칠 때가 많으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공모가 마감되면 훌훌 털어 내시고, 잠시 쉬셨으면 좋겠네요. 우리 모두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아홉 번의 브런치북 공모전 중 제가 몇 번을 도전했는지 모릅니다.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니 모든 공모전을 목격하기는 했네요. 개근상을 받기 전까지는 제가 학교를 빠진 날이 며칠인지 몰랐던 것처럼 수상 전까지는 모를 것 같습니다. 상을 받으면 담당자님께 여쭈어볼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우리의 궁금증을 위해 상을 받아야 할 것도 같습니다만 브런치북 공모전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십 년쯤 글쓰기를 하면서 여러 글쓰기 공모전에 도전해왔습니다. 조그만 공모전에서는 수상의 기적을 누리기도 했습니다만, 일상이 달라진 적은 없습니다. 큰 공모전에서 수상해 본 적이 없어서 인지도요. 가장 강렬한 수상의 기억은 한 포털 사이트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2등 상을 받은 때입니다. 기뻤지만, 크게 기뻐하지는 못했습니다. 1등을 하지 못했다는 오만과 너무 기뻐하면 기쁜 일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이상한 예감 때문이었습니다. 벌써 오래된 일이군요.
지금은 작은 공모전에 자주 도전하는데, 저는 공모전 담당자들이 꽤 안타까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매번 ‘안타깝지만 저희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답서를 보낼 리 없을 테니까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탈락 소식 대신 수상 소식만 덩그러니 전하는 공모전이 더 많습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부분입니다.
작은 공모전에 자주 도전하는 이유는 작은 성취를 느끼고 싶어서입니다. 작은 성취도 모이면, 큰 성취가 되리라 믿고요. 작은 공모전은 관심도가 낮은 만큼 수상 확률이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입상하지 못한 공모전이 더 많네요. 그래도 탈락한 원고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시체가 된 글을 잘 모아두었다가 어느 틈엔가 다른 글에 넣어서 양분처럼 씁니다. 어쩌면 제 글은 전부 실패한 글이 피운 꽃인지도 모르겠군요.
작은 공모전과 달리, 큰 공모전은 입상의 의미가 더 큽니다. 큰 상금 외에도 혜택이나 주목도를 보았을 때 작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공모전에 도전하며 느낀 것인데요, 많은 사람이 경쟁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자격을 얻는 일을 당연시하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적이나 시험을 중심으로 학습해 온 결과라는 생각도 덧붙여 봅니다. 그렇다고 공모전에 참가하는 일이 건강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서두에 축제라고 표현했듯이 브런치북 공모전은 작가 혹은 저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출전하는 글쓰기 올림픽 같기도 합니다. 작지만 분명한 구조를 가진 온라인 책을 직접 만들어 볼 기회라는 점에서 참가의 의의가 크고, 참여 인원에 비해 극소수가 메달(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는 점이 닮았습니다.
대학 입학 정원보다 학령인구가 줄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인구가 꾸준히 줄고 있음을 실감했지요. 하지만 사회 걱정보다는 글쓰기가 먼저 떠올랐습니다. 인구는 꾸준히 줄어드는데 글쓰기 공모전 참가자는 왜 꾸준히 느는지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체감상 참가자가 늘어났다 느낀 연유는 인터넷 때문이겠습니다. 출판사나 신문사에 우편으로 원고를 제출하는 것이 유일한 글쓰기 공모전이던 시절도 있지요. 반면 지금은 전자우편을 보내거나 플랫폼에 직접 게재하는 방식이라서 참여자가 더 많아 보이는 것 같네요. 그 많은 사람 중 몇 명은 수상의 기쁨을 맛볼 것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탈락할 것입니다. 브런치북 공모전도 예외는 아니겠지요.
수상 발표가 나면 반짝반짝 빛나는 수상작에 눈길이 모아집니다. 기쁨과 환희가 가득한 소감에도 많은 눈이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저는 온 세상이 주목하는 수상작을 바라볼 때보다 한눈을 판 적이 더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처음 몇 번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탈락의 멍에만 끌어안고 좌절하느라 눈을 감았거든요. 그 후로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무엇이 문제인 걸까. 저를 닮은 원고를 곰곰 들여다보았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옆을 보곤 합니다. 어떤 분은 눈을 감고 계셨고, 또 몇 분은 하염없이 거울만 보고 계셨습니다. 가끔은 눈이 마주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모인 이곳이 실패의 광장이 될 때 저는 괜히 숙연해지고는 합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는 모두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일 겁니다. 글쓰기는 언제나 실패가 기본이지요. 쓰고 지우고 쓰고 깁고 다시 쓰고 고치는 반복만이 유일한 완고 방법이니까요. 모든 과정에 실패가 있습니다. 우리만큼 실패에 익숙한 사람도 드물 거라 생각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 창작을 한다는 것은 실패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조,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참조
실패에 익숙하다고 해서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공모전 수상 발표 시간이 오면 누구나 긴장합니다. 익숙한 실패가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노력한 사람에게 결과의 시간만큼 떨리는 순간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웃을 수 없으니 누군가는 울게 될 것입니다. 울고 있으면 주변의 누군가 손을 내밀지도 모릅니다. ‘다음엔 잘 될 거야’ ‘다음번엔 꼭 수상할 거야’ 그런 말은 따듯하고 고맙지만,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성공 기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준 시인은 등단하기 전까지 백번 넘게 원고를 보냈다고 합니다. 백번 넘는 탈락을 경험한 셈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결국 작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성공할 때까지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실패는 좋은 일이 아니고, 나쁘기만 한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의미를 붙이는 순서는 늘 지나간 이후인 것 같고요. 실패는 이겨낼 대상도 피할 대상도 아닐 겁니다. 실패는 그저 실패일 따름이지요. 다만 작가와 작가가 아닌 사람은 실패로 판가름 나기도 합니다. 실패를 무릅쓰고 계속 쓰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작가가 되고, 용기 내어 멈춰서기로 결심한 사람은 작가가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어느 쪽이든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공모전을 목표로 글을 쓰다 보면 결과에 따라 다짐이 변하기도 합니다. 잦은 탈락 앞에서는 고꾸라지기도 하지요. 저도 포기를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포기한 적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포기했다면 포기를 생각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다 보니 제가 무도인이 아닐지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실전 없이 줄곧 수련만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는 아주 쎈 사람일지도 모르겠군요!
농담처럼 부렸지만, 실패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도 못합니다. 브런치북 공모전만 하더라도 여덟 번 중 대부분을 도전했습니다. 수상한 적은 없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가만히 있으면 될 일을 구태여 도전한 것입니다. 어떤 공모전이든 도전 끝엔 언제나 낙이 있었습니다. 낙樂이거나, 낙落이거나. 그런 일이 벌어질 걸 알면서도 잔인한 심판대를 향해 자주 걸어갑니다. 누구에게나 그래야 하는 인생의 주기가 있다고 믿으며.
최근 웹툰을 한 편 보았습니다. 여러 설정이 단편처럼 이어지는 작품*인데요. 그중 ‘불행의 순간마다 럭키 포인트가 적립되고, 적립된 포인트가 행운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일에는 반드시 운이 필요합니다. 운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운이 없으면 수상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동건 작가 웹툰, ⟨조조코믹스⟩
다만 우리에게 불행이 찾아올 때 그것이 행운을 위한 포인트 적립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탈락은 단지 운이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정신승리가 아닙니다. 99%의 실력도 1%의 운이 없으면 수상이라는 완성은 없는 법입니다. 어쨌거나 수상하시리라 믿습니다. 행운과 무운 대신 인연운을 빌어 봅니다.
밤이 깊습니다. 그간 공모에 도전하느라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나온 시간은 전부 의미 있는 순간들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발간 축하드려요. 브런치북을 발간하여 작가가 된 우리가 자랑스럽습니다.
쓰는 사람 이학민 드림. 2021.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