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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Dec 16. 2022

내 멋대로 선정한 ‘2022 올해의 작품’

남겨두고 싶은 올해의 책·영화·시리즈 10선

곳곳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하고 있다. 결과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기분도 든다. 한 해 동안 내가 추앙해 온 책이 목록에 없어서. 서운해서 이 글을 쓴다. 이른바 ‘내 멋대로 선정한 올해의 작품’.

     

그간 기사에 써온 것처럼, 책에 한정하지 않겠다. 영화와 시리즈를 더해 열 개의 작품을 뽑아보려고 한다. 선정 기준은 이렇다. 첫째. 올해 태어난 작품일 것. (시리즈 후속 제외) 둘째. 충분한 재미를 느꼈거나 질문을 발견한 작품일 것. 마지막으로 ‘올해의 작품’으로 남겨두고 싶은 것.

     

글의 진행 순서는 순위가 아니고, (순위는 없다) 형식별 구성도 아니다. (형식별 가산도 배제했다) 또한 가독성을 위해 하나의 이미지(사진) 안에 여러 작품을 나란히 두었으나 작품 간 관계성을 두지 않았음을 밝혀 둔다.



by 이학민(이미지 소스는 하단에 기재함.)



문나이트 Moon Knight

시리즈, 모하메드 디아브 감독 외, 디즈니+     


‘마블 시리즈’는 대체로 가볍고 유쾌하다. <문나이트>는 예외다. 유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재가 무겁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는 슈퍼 히어로가 나온다는 점에서. 예외는 소재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는 예외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 연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배우 오스카 아이작의 연기는 경탄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제 그것을 보았어

책, 박혜진 저, 난다

     

이 책에 기대 쓴 지난 글에서 나는 ‘삶의 질문 찾기’ 대신 ‘세상에 알리기’가 목표라고 적었다. 이번엔 내가 찾은 삶의 질문을 말해보겠다. 이 책에는 꼭지별 제목이 없다. 읽은 책과 그 책의 엔딩과 저자의 메모. 즉, 하나의 작품을 통과한 후 남겨둔 짧은 기록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글의 시작이었다. 기록은 어떻게 시작이 되는가.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질문이자 답이다.




작별 인사

책, 김영하 저, 복복서가

     

이 소설을 읽고서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혹시 나는 휴머노이드가 아닐까. 세상 모두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거면 어쩐담.’ 상상 다음엔 의문이 찾아왔다. ‘내가 휴머노이드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임을 증명하지? 정신인가, 신체인가.’ 내게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이런 순서로 다가온다. 신선한 설정과 서사에 즐거워하다가 이내 깊은 생각에 잠기기. 장난스러운 상상은 한때이지만, 이 여운과 사유는 거의 영원하다. 유독 기억에 남는 작별처럼, 자꾸 떠오른다.




by 이학민(이미지 소스는 하단에 기재함.)



헤어질 결심

영화, 박찬욱 감독, 모호필름

     

이 영화를 글로 옮기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묘한 구도 안에서, 태풍처럼 다가오는 ‘들리는 글’을 도무지 받아 적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무리해서 말해본다면 ‘명대사가 없는 영화’라고 하겠다. 명대사란 영화를 함축하는 한두 마디 대사. 이 영화에서 명대사를 꼽는 것은 불가해 한 일이다. ‘깊은 바다에 버리는 것’과 ‘사랑한다’라는 말 사이에 등호가 놓이는 일처럼. 아무렴, 어떤 미사여구를 덧대도 영화는 내게 이렇게 말하리라. 우리 일을 그렇게 (납작하게) 말하지 말아요.




여름과 루비

책, 박연준 저, 은행나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경험 중 가장 가치 있는 건 삶을 여러 번 살게 해준다는 점일 테다. 그것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여름이 되었다. 나의 유년이 아닌데, 나의 기억이 되는. 나는 여름이 아닌데, 끝내 여름이 되고 마는. 이 예상치 못한 동기화로 나는 여름 내내 유년을 앓았다. 올해 나의 여름은 이 소설 덕분에 ‘습도 다소 높음’이었다.     




수리남

시리즈, 윤종빈 감독, 넷플릭스


그래서, 올해 가장 흥미롭게 본 영상물이 뭐냐는 주변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유보했다. 연말까지는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드디어 미뤄둔 대답을 할 차례. 나는 《수리남》이 가장 흥미로웠다. ‘올해’가 아니라 ‘역대 영상 구독 서비스 속 한국 작품’을 통틀어도 이 시리즈만큼 재미를 충족시켜 준 작품은 드물었다. 끝 모르게 이어진 이 ‘의심과 기만의 향연(수리남)’은, 꽤 오랜 시간 많은 이가 회자할 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로 나온 그 시리즈는 《수리남》만큼 재밌어?”




깻잎 투쟁기

책, 우춘희 저, 교양인

     

무언가 알기 위해서는 내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것은 다르므로. 이 말은 반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안에 있으면 밖의 시선을 모른다고. 여기서 밖은 종종 ‘사회’가 되고, 안은 때로 ‘사정’에 불과해진다. 안과 밖 중 하나의 경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서 이 책의 시도는 귀하다. 밖에 있던 사람(연구자)이 안의 세계(농업 이주노동자의 일상)로 들어가 남긴 기록물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시도가 우리 사회에 중요한 변곡점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에겐 더 많은 투쟁기가 필요하다.




by 이학민(이미지 소스는 하단에 기재함.)



더 베어 The Bear

시리즈, 크리스토퍼 스토러 감독 외, FX

     

이 시리즈는 음식과 식당, 가족과 일상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실패담이기도 하다. 한 줄 설명 없는 클로즈업. 바쁜 손과 점점 커지는 목소리. 부딪치는 마음들. ‘광기의 주방’ 안에서 그들은 실패한다. 저마다 실패하지만, 함께 실패하기도 한다. 실패하고 반목하면서도 나아간다. 운명이 너무 쉽게 인간을 무너뜨리고 현실을 조롱하지만, 인간 또한 망가진 현실을 조롱할 수 있다는 듯. 계속 나아가는 것만이 그 방법이라는 듯. 엉망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내가 올해 만난 가장 아름다운 실패담이다.




인생의 역사

책, 신형철 저, 난다

     

평론과 칼럼은 산문이고, 시는 운문이다. 산문에서 운문을 느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신형철 평론가의 글을 떠올린다. 그의 산문이 내게는 운문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만 읽는 과정에서 시가 되는, 이 신비로운 인식 변화는 글로 쓰인 시가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가 쓴 시에 관한 이 산문은, 그래서 운명처럼 다가온다. 나는 이 책을 ‘시를 공부하는 시’처럼 읽었다. 여기서는 ‘시’를 ‘인생’이라 바꿔 불러도 무관하겠다.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책, 김달님 저, 수오서재     


봄에,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실재함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섣부르다는 것을 알지만 이 책을 개인적인 ‘2022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다.” 계절이 변해 겨울이 왔는데 내 생각은 그대로다. 왜 그럴까. 봄에는 “책 속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썼으나 완전한 대답은 아니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이 책에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만 담겨 있었다. 사람, 사랑, 일상, 이해, 유머 그리고 애타게 아름다운 문장들. 한마디로 김달님 작가의 글. 나는 오늘도 그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



by 이학민(이미지 소스는 하단에 기재함.)



올해의 작품을 선정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 열 개만 남겨두기. 그러기엔 올해 만난 작품도 여느 때처럼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정이 괴로웠던 건 아니다. 다른 시간, 다른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한데 모아 떠올리는 일은 제법 벅차고 즐거운 시도였다. 해서, 여기저기에 묻고 다닐 참이다. “당신이 선정한 ‘올해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내가 기대하는 건 당신이 뽑는 선정작이 아니다. 좋았던 작품을 떠올리기 위해 바쁘게 기억을 헤집던 당신이, 한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웃는 것. 그게 보고 싶어서 나는 이렇게 열 개의 작품을 먼저 말해 본다. 해서, 당신에게도 묻는다. “지금, 당신을 웃음 짓게 만드는 ‘올해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2022. 12. 16.)


(@dltoqur__)





[이미지 소스] 표지 이제 그것을 보았어, 인생의 역사(이상 Ⓒ난다), 작별 인사(Ⓒ복복서가), 여름과 루비(Ⓒ은행나무), 깻잎 투쟁기(Ⓒ교양인),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수오서재). 포스터 문나이트(Ⓒdisney+), 헤어질 결심(ⒸCJ ENM), 수리남(ⒸNetflix), 더 베어(ⒸFX). 패턴 ‘SHATTERED ISLAND’(ⒸJULIEN RENVOYE on thepattern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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