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선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민 Dec 20. 2022

우상의 성취라는 위로

2022 카타르 월드컵과 메시 그리고 박노해의 시

내게는 축구가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새벽부터 새벽까지. 축구를 하고, 보고, 말하고, 쓰면서 보내기도 하였다. 돌이켜 보면 기쁨과 슬픔, 좌절과 환희라는 인생의 사소한 감정을 축구로부터 가장 먼저 배웠던 것도 같다.


기년 전, 바쁘다는 핑계로 보지 못한 경기가 점점 늘어날 즈음,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축구는 나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는 것. 물과 공기처럼 필수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항상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가족과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살아가겠다는 의미였으리라.


그로부터 가까우나 집착하지 않으며, 이따금 잊고 살아도 절대 멀어지지 않으리란 각오로 축구와 동행해 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이제는 곁눈질로 지켜볼 때가 더 많다. 다만 축구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돌아올 때가 있다. 바로 월드컵이 열릴 때.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나 역시, 우리 선수들의 행보를 보며 눈물을 흘렸으나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다.


자국이 월드컵에서 탈락하면 관심을 접거나 ‘편안한 관전 모드’로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일 터.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거의 반평생 지켜본 나의 우상, 리오넬 메시. 모두가 ‘축구의 신’이라고 말하는 그의 마지막 월드컵 도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에서 메시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대하던 결과가 아니었고, 나는 실망했다. 메시가 월드컵 결승을 밟는 일이 다시 못 올 기회라는 예감이 들었으나 한줄기 믿음은 있었다. 한 번 정도는 다시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메시라면.


그리고 4년 뒤 러시아에서 열린 월드컵. 메시의 아르헨티나는 프랑스와의 16강 전에서 패해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엔 내 생각도 변했다. 이 팀은 결코 우승할 수 없겠구나. 적어도 메시가 현역으로 뛰는 시대에서는. 축구에서 모든 것을 이룬 메시가 월드컵은 들어올 릴 수 없을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열린 2021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하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제 메시에게 남겨진 숙제가 단 하나. 월드컵밖에 없다는 사실에 내 마음도 조금 들뜨기도 하였다. 무언가 오고 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만 오래된 의심과 불신을 지우기엔 부족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메시와 그가 속한 팀들을 지켜보며 느낀바. 세계 최고 선수가 있다고 해서 우승을 담보할 만큼 축구가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 그렇다고 응원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한 분야에서 모든 성취를 이룬 인물은 흔치 않다. 역사를 찾아봐도 몇 없는 극소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월드컵 없는’ 메시도 그렇다. 많은 것을 이뤘다. 넘치도록 충분히. 해서, 월드컵 우승이라는 메시의 마지막 도전의 성공까지 바라는 나의 마음이 어쩌면 욕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기만 할까. 이룬 게 많은 이에게는 간절함이 없을까. 내 힘만으로 되지 않는 일에 좌절해 본 사람을, 응원하면 안 되는가. 그런 생각으로 토너먼트를 지켜봤다. 간절했다. 매 경기 간담이 서늘했다.


드디어 시작된 결승전. 종료 휘슬이 울리고,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가 성공할 때까지 나는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믿고 싶은데, 믿는 순간 물거품 되어버릴까 봐. 간절한 의심의 결과는 과연.


2022년 12월 19일 새벽(한국 시각). 메시는 결국,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내게 이것은 단순히 우상의 성취가 아니라 축구의 완성으로 다가왔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지금껏 축구를 봐온 것처럼.


월드컵 트로피 없이도 메시는 메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해 놓고도 막상 우승컵을 들어 올리니 기분이 편하다. 메시를 알지 못 할 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할 수 있는 예시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서.


책 기사에서 온통 축구와 메시 이야기만 하니 의아하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부턴 책의 시간. 시 한 편을 건네드리려고 한다. “메시는 그라운드의 시인이다”라고 말한 박노해 시인의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느린걸음, 2022)에 수록된 표제작 <너의 하늘을 보아>. 전문 대신, 전하고 싶은 부분을 여기에 옮긴다.


1연,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와 3연,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이 부분을 8년 전 좌절했던 나의 우상, 메시에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4연,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이 대목을 언젠가 도전 앞에서 또 흔들릴 나를 위해 적어 둔다.


끝으로 6연과 7연,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이것을 자기라는 의심에 빠진 모든 분에게 건네고 싶다.


세상일은 마음처럼 되지 않고, 그것은 올해나 다가올 한 해에도 비슷할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시 한 편으로, 우상의 성취만으로 위로가 되지 않을 터. 그러나 하나의 시가 넓디넓은 하늘을 뒤덮고, 우상의 성취가 무너진 내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는 것. 대수롭지 않은 이 사실 하나는 말해보고 싶었다.


우상의 성취에 하루쯤 기분이 좋아지거나 문장 하나에 감동하는 일이 흔한가. 아닐 것이다. 그건 다른 곳에선 쉽게 얻지 못할 사소하고도 귀한 경험이자, 우리가 스포츠와 문학을 비롯한 문화를 향유하는 가장 명징한 이유이리라.



(2022. 12. 20.)


(@dltoqur__)





매거진의 이전글 내 멋대로 선정한 ‘2022 올해의 작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