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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Dec 28. 2022

책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영건 에세이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봄부터 책·영화·시리즈에 기대 쓴 글을 공개하였다. 어느덧 겨울, 한해의 끝이 보인다. 이런 순간마다 반성 혹은 후회가 몰려온다. 올해는 유독 전자로 마음이 기운다. 사계절 내내 서툰 글을 부려왔다는 점에서. 언제쯤 매체와 독자라는, 우연하고도 귀한 이 인연에 제대로 응답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은 결과물. 그것이 목표가 되니 선택하는 책도 달라졌다. ‘책에 관한 책’에 관심이 커졌다. 이전에도 내게 독서는 생활이었다. 다만 독서가의 눈보다 글쓴이의 손이 앞서 나가기 시작하고부터는 ‘책을 읽고 쓴 글의 모음’을 지나치지 못한다. 무언가 배우고 싶어서. 인문 출판사 어크로스에서 나온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김영건, 2022)도 같은 이유로 선택한 책이다.

     

저자는 햇수로 8년, 3대째 같은 자리에서 책을 파는 서점인이다. 온라인 서점에 익숙해 동네 서점조차 멀게 느껴지는 내게 서점인은, 부끄럽게도 조금은 잊힌 직업이다. 서점에서 책을 추천받거나 신간 정보를 안내받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다만 책에 담긴 이야기까지 생경하진 않았다. 사람과 일이 주제인 책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수집인’으로서 저자는, 단골손님이 선호하는 주제의 신간을 기억해두었다가 그이가 오면 슬쩍 건넸다. 어느 날에는 한 손님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서점에 오던 손님이 성년이 되어 전한 편지. “엄마를 기다리던 늦은 밤에 밖이 너무 추워서, 주위에서 가장 밝은 곳을 찾아 들어왔는데 그게 서점이었어요. 그때부터 서점에 가는 일을 취미 삼게 되었습니다.”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부류는 자녀에게 책을 선물하는 부모님들”이라던 그는 아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어서 눈길을 헤치고 서점에 방문한 할머니와 사회로 나올 수 없는 아들에게 책을 보내기 위해 서점에 온 중년 여자를 만나기도 했다. 매번 “사랑의 목격자”가 되어 “어떻게든 알리고 싶은 마음”을 품는 저자의 태도를 읽으며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책의 제목에 쓰인 ‘책의 파도’가 ‘이불’로 보일 만큼.

    

그렇다고 이 책에서 ‘책의 파도’를 지울 수는 없겠다. 저자가 서점을 오가는 사람과의 인연과 사연을 책을 통해 전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책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일을 돕는다. 마치 서점처럼. 서점인처럼. 따라서 저자가 서문에 밝힌 대로 “이 책은 무엇보다 책의 유용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으리라.

     

책과 서점이 아닌 서고 뒤편의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휴무일 없이 서점을 운영하던 저자는 아이를 위해 매일 오후 놀이터를 오갔다. 서점은 아이가 뛰어놀 공간이 되지 못해서. 서점과 놀이터를 오가던 그는 고심 끝에 휴무일을 정했다. 일요일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 대목이 내게는 질문처럼 들렸다. 연중무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정답을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말해볼 수는 있겠다. 한 해가 끝나듯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한때’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들은 귀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낮이나 밤이나 같은 자리에 있는 무언가. 그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는 장소. 저자가 일하는 서점도 누군가에겐 그런 곳일 테다. 그러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자는 ‘서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했다. “책들의 과잉 속에서 누군가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도록, 가장 먼저 그것을 고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그러나 좋은 책을 먼저 고른다고 해서 책과 사람이 전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찾지 않아 책장에 오래 머무는 책도 있다. 저자는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서점을 세탁소라고 가정하면, 그 책들을 맡긴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지키는 서점에 ‘맡긴’ 책을 찾으려면 속초에 가야 한다. 속초란 어떤 곳인가. 중앙시장의 닭강정과 아바이 순대 같은 먹거리를 떠올리는 분도 계실 테고, 누군가는 실향민의 도시라고 말할 테다. (속초에 관한 인문·사회·문화 정보는 저자의 전작 <대한민국 도슨트 01 속초>*에서 만나보실 수 있다)

      

동아서점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그곳을 가보지 못했다. 몸이 아닌 눈으로, 책으로 만난 그곳에서 저자는 말한다. “책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속초에 가면 동아서점을 가야겠다. 아니, 동아서점에 가기 위해 속초에 가야지. 이것이 반성으로 가득한 한 해의 끝에서 내가 세운 새해 첫 계획이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기대가 샘솟는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는 것. 그건 희망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2022. 12. 25.)


(@dltoqur__)



*《대한민국 도슨트 01 속초》(김영건, 21세기북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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