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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Jun 08. 2023

정확하게 부끄러워하기 위해서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을 때 꺼내 읽는 책 3선.

 남들 보기에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것을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인생 과제로 둔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내게 ‘괜찮은 어른’은 목표가 될 수 없음을. 그로부터 다짐은 이렇게 변했다. ‘훌륭한, 선량한, 멋있는’ 어른 대신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자고. 한 인간이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고 확신할 때 자신과 주변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모르지 않게 되자 또 한 번 변했다. 정확하게 부끄러워할 줄 아는 어른이 되자고. 이 역시 어려워 보이는 과제이지만 일단 현재의 다짐은 이렇다.     


 비슷한 의지를 가진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해 보려고 이 글을 쓴다. 전부 말할 수는 없으니 세 권을 선택했다.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저자의 나이, 성별, 직업을 고려하지 않을 것. 둘째. 사회 속 시민이 쓴 책일 것. 셋째. 소설이나 시가 아닌 산문 형태일 것. 넷째. 신간이 아닐 것 그렇다고 고전도 아닐 것. 다섯째. 세 번 이상 읽고, 분량 절반 이상을 필사(타이핑)한 적 있을 것. 마지막으로, 참신하지 않은 목록이 되더라도 다시 한번 말할 가치가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다만 한 사람의 의견일 뿐임을 밝혀 둔다.




태도의 말들

엄지혜, 유유, 2019


 인간관계에서 ‘존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는 저자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모른다. 태도로 읽을 뿐이다. 존중받고 싶어서 나는 태도를 바꾸고, 존중하고 싶어서 그들의 태도를 읽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자신(나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를 찾아 정확히 밑줄 긋고 방점 찍는 것.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리라. 읽는 내내 나는 뜨끔하거나 안도했는데 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끄러웠고, 부끄러움 덕분에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간신히 고칠 기회를 얻었다.     


 물론 해결된 것은 많지 않다. 다만 태도를 점검하는 습관이 생긴 것만으로도 다행한 일이리라. 한 가지 더. 프리랜서인 나에게 이 책은 어른 같은 선배였다. 요컨대 나는 업무 관계자 또는 독자에게 보내는 메일을 중요히 여기고 제법 성실하게 쓰는데, 바로 이 책에서 배운 태도이다. 한 사람의 일면을 그이의 전면으로 넘겨짚지 않게 된 것 또한 책을 읽고 믿게 된 진실이다. 상대의 좋은 면을 지나치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의 태도라는 것도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잘 살아 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난다, 2017


 ‘위로’나 ‘아름다움’ 같은 주제에 걸맞은 책이 아니냐고 반문할 분들에게 이 문장을 전한다.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다정함에 깃든 한 어른의 의도를 알기 전까지 나는 부끄럽게도 상대의 기분을 의식하지 않고 내 감정을 드러냈다. 자주 상처를 주었고, 그럴 때마다 상반된 두 감정이 찾아오곤 했다. ‘이미 늦었다’와 ‘이제라도’. 전자에 머물러 살던 나는, 이 책을 겪고 난 후 전자가 추동하는 후자를 살게 되었다. 

    

 이제야 주변 사람들 앞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나를 꺼내려고 노력한다. 체면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만이 서로를 편하게 해주는 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해, 울음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착각도 버리게 되었다. 울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울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타인을 향한 울음은, 그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건네는 다정한 침묵임을 이제는 조금 안다. 울어주는 사람 옆에서 울어 본 사람은 안다. 함께 울면, 달라진다. 다정하게 우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자주 꺼내 읽는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2018


 저자가 쓴 문학에 관한 글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정확하다. 이 책의 글도 그렇다. 이것을 찬미로 느끼신대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책에 담긴 광대한 행간을 전부 소화하지는 못한다. 간신히, 글 안에 담긴 품위, 지성, 배려를 감지할 뿐. 그뿐인가. 인내도 발견했다. 혐오, 공격, 조롱에 경도된 세상에서 저자는 이렇게 썼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그러면 안 된다고 알려준 어른이 내게는 없었다. 많은 어른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랐지만, 알려주지 않으면 도무지 모르는 내게 ‘조롱’은, 그래서 유희의 도구였다. 가깝게는 주변 사람을 놀리는 데 쓰고, 멀게는 사회적 인물―특히 비난받아 마땅하게 여겨지는 이에게 썼다. 잠깐의 웃음, 내가 더 낫다는 우월에 취해 인내한 적 없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책을 읽고서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러움을 맞닥뜨린 나는 그 후로 조롱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무지로 휘두르던 폭력을 멈추게 하는 글. 이 책에는 어른의 일을 대신하는 그런 글이 가득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뜻깊은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 누군가는 가르침을 주겠다는 이가 아니라 배우려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 소개한 세 명의 저자처럼. 같은 이유로 세 저자는, 아마도 자신 또는 자신의 저서가 ‘어른’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쓰인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가당치 않다며 손사래 칠지도 모른다. 그럴 만한 분들이라서 나는 그분들을 더 신뢰하는데, 그래서 이 글이 무례가 될까 봐 염려한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덧붙여야 하겠다. 세상 모든 책은 괜찮은 어른이 되는데 일면 도움이 된다고. 모든 책이 인생의 교재가 될 수 있다고.

     

 아무리 노력한들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란 불가능하다. 부끄러움 하나를 극복하면 또 다른 부끄러움이 찾아오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부끄러움은 불가피한 감정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으리라. 그저 정확하게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 그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쪽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존재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있으며, 나는 조금이나마 필요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내게도 인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3. 06. 08.)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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