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명의 지인 세 명의 친구
#. 1
인생을 통째로 성실하게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성실하고자 했던 순간들이 성글게 모이면 대체로 인생을 진실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들어서 유독 성실한 순간이 드물어졌다 싶어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이 마음에 들어왔다.
만약 새벽이나 한밤중에,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읽을 만한 좌우명 같은 것을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 집 벽에 햇볕 아래서는 금빛으로 빛나고 달빛 아래선 은빛으로 빛나는 글자로
다음과 같이 써두면 좋으리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오스카 와일드, 《옥중기》-
#. 2
남으로 살 것인가, 남처럼 살 것인가!
이것이 2018년의 마지막 날 기혼여성 셋이 모인 자리에서 제기된 화두였다.
시작은 내 고등학교 동창인 Y가 던졌다.
“난 진짜 당장이라도 이혼해서 남편과 남남으로 살고 싶어. 근데 주변에서 다 말려. 하-아.
쌍둥이가 다 클 때까지는 참고 남편과 살아야 할까?”
“참아.”라고 말하기엔, 친구네 쌍둥이가 대학에 가려면 (자그마치) 17년이 남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 S는 대답 대신 자신의 사연 보따리를 풀어놨다.
“난 쉬는 날마다 시댁에서 오길 바라. 당장 내일도 새해라고 아침부터 떡국 먹으러 오라는데, 가면 인스턴트 떡국을 내놓고… 도대체 왜 못 쉬게 안달인지.”
다음은, 내 차례. 셋 중에 결혼을 가장 늦게 하고 아이가 없었다. 마땅한 소재가 안 떠올랐다. “난 없어.”라고 말하기에는 난감해서, 최근에 내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남편과 언성을 높였던 기억을 끄집어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토크쇼 녹화였다면 편집됐을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만 얻었지만.)
이후의 대화들은 모두 ‘무심한 남편’이란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무성한 줄기들이었다. 계속 듣다 보니 이것이 내 결혼생활의 미래인가 하는 기분이 들면서 우울해졌다. 아직 닥치지 않았을 뿐,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국 이렇게 지질하게 되는 것인가 싶어 졌다.
그렇게 수다와 고민들을 털어놓다가 갑자기 Y가 “요즘 법륜스님 말씀을 들으면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쾌속으로 해탈의 경지에 다다른 표정을 지어 보였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스님들이 많다던데, 그래서 스님이 고양이를 키우면 십만 부는 따놓은 당상이란 농담까지 있다던데, 문득 어떤 내용이기에 Y가 추천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3.
궁금하다고 다 찾아보는 건 아니지만, 하필 그날 밤에 유독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열었다.
법륜스님의 영상은 꽤 많았다. 가장 위에 있는 영상부터 차례로 눌렀다.
즉문은 진지했지만 장황했고, 즉설은 가벼웠지만 꿰뚫는 게 있었다. 아주 날이 잘 드는 칼로 헝클어진 삼 가닥들을 힘 하나 안 들이고 한 번에 싹둑 잘라 버리는, 쾌도난마의 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어 고민이라는 고등학생의 고민에 스님은 “나도 그래. 다 재미없어. 재밌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어. 나도 차에서 김밥 한 줄 먹으면서 그렇게 살아.”라고 하자 모두들 와- 하고 웃었다.
스님이 모든 고민들에 해결책을 주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의 해법이 명쾌하게 들리는 것은 모든 괴로움은 자기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란 것을 일깨워 줘서다. 상황과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당신의 마음부터 먼저 다스려라. 당신의 고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는 것이었다.
요리의 마지막 참기름 한 방울처럼, 유머를 얹어서 마무리되는 스님의 상담은 뭇 중생의 고통을 잠재워줬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며 나 역시 깊고 다디단 잠이 들었다.
아직 해놓은 건 없고 앞일은 불안한 나의 37살,
2018년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2019년이 잠결에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