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를 때려치우고 에세이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를 쓰고 있을 때 남들은 빨리 이직을 준비하라고 채근했지만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냈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면 책의 형태로 자신의 글을 쉽게 출간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어른들의 시각에서 여전히 책은 성공한 사람이 내는 것, 존경할 만한 성과를 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우리 딸이 책을 내다니! 어깨 펴고 주변에 자랑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엄마는 내 출간일을 누구보다도(어쩌면 나보다도) 손꼽아 기다리셨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전부터 엄마는 매일 아침 8시쯤 하루를 시작하며 딸에게 짧은 이메일을 꼭 보냈다. 사실 그것은, 이메일이라기보다는 그저 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짧은 기도문에 가까웠다. 늘 감사해라, 최선을 다 해라,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내 딸 사랑한다. 엄마는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2.
두 번의 출간 날짜 연기 끝에, 퇴사 후 11개월 만에, 나의 첫 에세이가 정식 출간됐다.
3.
지방 중소서점 판매대에 책이 진열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출간 소식을 듣고 그날 바로 읽고 싶어 했지만 책을 손에 쥐기까지 서울보다 4일이 더 걸렸다. 그동안 엄마는 블로그 서평단들이 올린 게시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조마조마해했다. 좋은 평이 많았지만 엄마는 안 좋은 얘기를 여러 번 곱씹어서 읽고, 나름대로 의미를 분석해 딸에게 말해줬다. 그 사람이 네 책을 일기 같다고 표현한 거는 이런 뜻에서 한 말일 거야. 다음 책도 쓸 거지? 참고해서 발전하면 되지, 내 딸.
4.
책 세 권을 손에 쥔 엄마는 교회 주일예배에 당당히 두 권을 들고 가서 목사님 두 분에게 한 권씩 선물했다. 엄마의 표정에서 큰 자부심을 감지했을 목사님은, 예배가 끝나고 문 앞에서 성도들과 인사하는 시간 내내 성경책 대신 녹색 표지에 빨간 머리를 쥐어뜯는 도발적인 일러스트가 그려진 내 책을 들고 계셨다고 했다.
5.
그러고 나서 엄마는 그제야 내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냥 좋아하던 엄마는 책을 다 읽었을 텐데 내게 책과 관련해 별다른 전화나 카톡이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언니를 시켜 엄마의 반응을 떠보라고 했다. 언니는 엄마가 “좋았지! 가족 평은 무조건 좋다고 하는 거니까 들을 필요가 없어!”라면서 화제를 돌렸다며 이상 분위기를 알려왔다.
내내 마음이 쓰여 그날 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30분간 다른 얘기를 빙빙 하다가 “책에 아빠만 좋게 그려지고, 엄마는 홀대해서 맘이 좀 그랬지?”라고 물었다. 그런데 엄마가 꺼낸 얘기는 의외였다.
6.
가난.
7.
가난한 옛날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울컥했다고 한다. 자식들을 가난한 환경에서 키웠던 시절과, 그때 딸이 느꼈던 순간들을 글로 읽으면서 마음에 턱턱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이 신경 쓰일까 봐 다시 목소리 톤을 올려 말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안 쓰고 메시지만 보는 건데 괜히 당사자들만 그 한두 문장에 마음 쓰는 거야. 그래서 엄만 괜찮아. 아, 그러니까 주변에다가 책 추천하고, 읽어보라고 그러는 거지!”
8.
생각지도 못한 반응.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9.
“엄마, 가난했던 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수준의 집이었던 거야. 그땐 다 그렇게 여유가 없었잖아.”
“맞다, 맞아.”
“그리고, 요새는 부모보다 자식 세대가 더 못 사는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 집은 다 자식들이 자리 잘 잡았잖아. 다른 집에서는 엄청 부러워할 일이야, 안 그래?”
“그라제, 부러워하제!”
10.
나는 이 책을 다 쓰고 나서 《평범함의 위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딱딱한 어감 탓에 최종 제목으로 채택되지는 못했지만. 누구는 퇴사기로, 누구는 취재기로, 누구는 일기로 느낄 수 있는 내 첫 책에서 결국 내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실함과 자존감이 얼마나 위엄 있는 것인지 였던 것 같다.
11.
엄마는 브런치가 뭔지 모르니까, 이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고백. 나보다 30년을 더 많이 산 엄마, 늘 사랑하고 존경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