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Mar 29. 2019

나의 첫 강아지

그 코가 닿는 순간, 결심했다. 뛰어야겠다고. 나는 내 13년 인생에서 가장 빨리 달려야 했다. 내가 간 길이 과연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우리 집 쪽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미친개를 상대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미친 듯이 달리는 길뿐이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내 책에서 썼던 것처럼 나는 어릴 적부터 개를 꽤나 무서워했다. 아주 작은 말티즈 한 마리를 봐도 길 한쪽으로 붙어서 살살 피해 가고, 개가 낮게 컹컹거리는 모습만 봐도 뒷목이 쭈뼛 섰다. 그러다 애견인과 결혼해 살게 되고, 포메라니안을 세 마리 키우는 시댁을 왕래하면서 강아지에 대한 무섬증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던 중 최근, 나는 한 마리의 강아지와 동고동락(?)하는 첫 경험을 했다. 비록 열흘뿐이었지만. 남동생 부부가 일주일 해외여행을 떠나는데 강아지를 맡길 데가 없다며 간절하게 위탁을 부탁해온 것이다. 어느 에세이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한 여성이 퇴사를 하고 났더니 깐 마늘 대신 몇 푼이라도 더 싼 통마늘을 사서 직접 까게 되고, 시댁의 대소사마다 불려 나가야 했단다. 나도 이제 가족들 사이에서‘시간이 남아돌아서 언제든지 갖다 쓸 수 있는 잉여인력’ 취급을 당하는 건가? 그런 억울한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려 인구 천만 시대 흐름에 한번 동참해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맡게 된 생후 6개월 갈색 푸들 이름은 학동이.

거주지가 학동이란 단순한 이유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생은 애견 샵에 구경 겸 들렀다가 귀에 작은 상처가 있다는 이유로 반값 세일을 해주겠다는 가게 주인의 흥정에 넘어가서 새 식구를 덜컥 들이게 됐다. 애교 많고 사람 좋아하는 학동이는 그 이후로 동생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동생은 이것저것을 신신당부하고 여행을 떠났다. 

뭔가 불만이 있는 표정이다... 


     

첫날밤, 학동이를 거실에 두고 안방에서 잤더니 새벽 3시부터 문을 긁으며 낑낑댔다. 그 작은 체구에서 컹컹 짖는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참다못한 남편이 나가서 거실 소파에 누웠고, 학동이는 남편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결국, 우리 둘 다 거의 선잠을 자서 초췌해진 얼굴로 아침을 맞았다.   

둘째 날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동생에게 카톡으로 물어보니 늘 자기랑 함께 자는 버릇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이 작은 방에 요를 깔고 학동이와 같이 잤다. 하지만 결국 새벽마다 얼굴을 핥아대고, 들썩대고, 짖어대는 통에 우리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내가 눈을 떠서 거실로 나가보니 학동이는 무려 다섯 군데에 자신의 흔적을 당당하게 남겨놓고 간식을 달라는 듯 꼬리를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아... 낮 동안에도 우리의 일상은 무참히 흐트러졌다. 집에 학동이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걱정돼서 약속을 아예 미루거나 외부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주고 발바닥을 씻기는 일도 꽤 수고로운 일이었다.  

 

‘아, 이 천덕꾸러기 어쩌지!’

     

마음 같아서는 동생에게 다시 데려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동생은 누나의 속도 모르고 동남아 저편에서 모히또 마시는 한가로운 사진 따위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디데이를 카운트하면서 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며 학동이와 함께 했다.  결국, 동생 부부는 귀국하자마자 우리 성화에 못 이겨 새벽 1시 반에 학동이를 데리러 우리 집에 왔다.  

     

그렇게 학동이가 가고 난 다음날, 남편은 잠을 못 자서 피로가 쌓였다며 하루 휴가를 냈다. 우리는 조용해진 거실에서 오래간만에 여유로움을 누렸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 같이 나갔다가 들어오려는데 남편과 나의 눈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우리는 학동이 생각이 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학동이가 현관 앞에서 우리를 반기며 연신 점프를 하고 있을 것만 같고, TV를 보다가 습관처럼 “학동아~”하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신기하다, 습관이란 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더니.”  

     

작은 간식 조각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납작 엎드려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귀염을 떨었던 학동이가 그저 귀찮기만 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 열흘 간 우리에게 남기고 간 흔적이 꽤 깊었나 보다. 나의 잠을 방해하다가도, 내가 나갔다가 들어오면 언제나 같은 강도의 순수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꼬리를 흔들고 점프를 해대던 학동이를 생각하면서 ‘이래서 강아지를 키우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아, 적막한 집에 있으니 코딱지 만한 간식 한 조각에도 발라당 엎드려 날 쳐다보던 그 모습이 조금 그립네.   

  

강아지가 우리의 얼굴을 핥아주는 것보다 훌륭한 정신 치료사는 없다

                                             -번 윌리암스-

     

그래, 이 말 조금은 인정.   


작가의 이전글 딸의 첫 책을 읽은 엄마의 반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