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고 나서 내 일상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을까?
어떤 이들은 책이 대박이 나서 하루아침에 유명세를 얻고, 큰돈을 한 번에 쥐기도 하고, 시대와 세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책이 그런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잠시, 몽상만 해 보았을 뿐... 상상은 자유니까.) 나는 그저 내 글이 얼굴 모르는 독자들에게 소소한 공감을 얻고, 내 원고를 선택한 출판사는 적자가 안 났으면 좋겠고, 다음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은 이미 쓰는 과정에서 나에게 무엇보다 큰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었다.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막상 책을 내 보니 전에는 몰랐던 일들을 직접 겪게 되면서 새롭기도 했다. 평범한 한 개인의 서사가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인스타 디엠으로 장문의 감사글을 보내온 독자도 있었고, 소중한 선물을 보내온 독자도 있었다. 원고 청탁이란 것도 처음으로 받아봤다. 무엇보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도전해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증이 생긴 기분이었다.
또 SNS나 유튜브 같은 것들이 초기 판매를 얼마나 견인할 수 있는지 그 위력을 알게 됐다. (그 기반이 사실상 전무한 나로서는 먼 나라 얘기였지만.) 기자로 일했을 때는 홍보담당자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내가 걸러내는 입장이었지만 반대로 내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셀프 홍보’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셀프 홍보를 하다보니 심지어는 이런 날도 있었다. 약속이 있어 종로 영풍문고에서 에세이 코너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나름 시장조사의 마음이랄까), 갑자기 어떤 20대 여자 둘이서 다가왔다. 처음엔 ‘도를 믿으십니까’ 신도들인 줄 알고 경계했는데, 작은 문화공동체 같은 사회적기업에서 일한다며 책을 추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들을 인도하여… 내 책 앞에 세워두고 “이 책이 얼마나 재밌냐면요…” 라며 한참을 영혼을 담아서 열렬히 ‘홍보’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말했다.
“이거, 사실 제가 썼어요.” (ㅋㅋㅋ)
책이 갓 인쇄됐을 때 출판사에서 20권을 우리 집으로 미리 보내왔다. (당연히) 한 권씩은 사줄 것 같은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고, 조금 예의를 갖춰 인사드려야 할 곳에는 책을 우편으로 보냈다. 대체로 에피소드에 익명으로 언급된 이들이 그 대상이었다.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을 비추는 이들도 있었다. 20권 중에 4권이 남았고, 3권은 내 후세(지금 없고, 앞으로도 미정이지만)를 위해 남겨두자는 마음이었다. 마지막 한 권을 누구에게 줘야 할까. 더 이상 머릿속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고, 인맥 밑천이 바닥났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져서 두 달 넘게 책상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었다. 그러다 아무에게도 읽히지 못하고 있는 내 책의 신세가 문득 처량해 보였다. 나는 어느날 우체국에 들러 그 한 권의 책을 청와대에 보냈다. 무작정. 행운의 편지 보내는 심정이었을까? 바쁘신 대통령이 읽지는 못하겠지만 누군가의 손이라도 타고, 다만 몇 장이라도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 책을 썼을 당시의 내 마음과 책의 메시지를 간단히 적어서.
그리고, 두 달 가까이 지나 까맣게 잊었을 무렵인,
오늘 답장이 왔다.
높은 분의 손에 꼭 올려지지 않아도 괜찮다. 청와대에는 하루에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구구절절한 사연들과 선물들과 편지들이 도착할 것이니까. 내 책은 격무에 짓눌린 말단 직원이 한번 휙휙 넘겨보고 던져진 다음, 나중에 청와대에서 그렇게 받은 책들을 모아서 어딘가 소외된 곳에 기증하게 되는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보내길 잘한것 같다. 책이 우리 집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 그게 훠-얼-씬 가치 있는 일이니까.
그래, 이렇게, 머뭇대면서도, 뭔가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향해서 작게라도 움직이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겠지.
혹 그것이 실패담으로 끝날지라도, 못다한 일들이 내 가슴을 쿡쿡 쑤셔서 괴로운 날들은 오지 않겠지.
따뜻한 답장을 받고 나니 며칠간 급성 후두염으로 끙끙 앓았던 몸이 조금은 맑아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