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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y 17. 2019

아무것도 아냐, 모든 것이기도 하고

여행기처럼 쓰는 돈 이야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깨끗하고 밝은 곳》은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노인 한 명이 홀로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간은 새벽 2시. 이 마지막 손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야지만 영업을 마감할 수 있다. 노인을 바라보며 웨이터 두 명이 대화를 시작한다.   

    

“저 영감 말이지, 지난주에 자살하려 했대.” 한 웨이터가 말했다.

“뭣 때문에요?”

“절망감 때문이지.”

“뭣 때문에 절망했는데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는군.”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는 어떻게 알아요?”

“돈이 꽤 많거든.”  

     

이들의 대화는 여기서 일단락된다. 소설에는 안 나오지만 아마 웨이터는 고개를 조금 끄덕거렸거나 “아…하.”하고 수긍하는 눈빛을 보냈을 게 눈에 선했다. 노인이 돈이 많으니까 '아무것도 아닌 일' 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말은 곧 돈 문제만큼 절망적인 일이란 건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 웨이터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을 것이고, 노인보다는 나이가 적을 확률이 높으므로 당장의 먹고 살 일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고민이라고 평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둘의 대화의 마지막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아주 어리석어 보였지만 그 말이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에 나 역시도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20세기 초에 쓰인 이 소설에서도 그러한데, 백 년이 지난 지금 돈의 위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 돈 앞에서 아주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목돈이 없어 매달 월급을 헐어 월세를 감당해야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생계 문제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쳇바퀴로 내몰린다. 자녀에게 남들만큼은 해 주고 싶었는데 남들만큼도 못 해주는 상황이 원망스럽다. 마지막 한 조각의 자존심까지 굽혀야 하고, 돈이 돈을 벌어다 주는 남들을 보면서 이자에 이자가 붙는 자신의 상황에 큰 벽을 마주한 느낌을 맞닥뜨린다. 수억 원을 내야 저녁 한 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 신랄한 저주(?)를 내렸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당신은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할 것이다”라고.

     

나는 평범한 경제적 수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담백하게 말하고 싶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사실 평균보다 살짝 아래에 있었다. 아빠는 젊은 시절 회사에서 나온 뒤로 여러 가지 일을 도모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다. 엄마는 부족한 생활비를 벌충해 보겠다고 은행 빚을 내 작은 중국집을 열었는데, 역시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솜씨 좋으면서도 성실한 주방장을 채용하지 못했고, 틈만 나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짜장면 몇 개만 달랑 시켜놓고 탕수육 서비스를 당연한 듯 요구하며 (엄마 표현에 따르면) 깽판을 쳤다.

여유란 단어는 우리 집과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은 여태껏 휴가다운 휴가를 제대로 가보신 적이 없다. 엄마는 육십 년 넘게 살면서 아직도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 여유란 것은 넉넉하고 남음이 있다는 뜻인데 우리 집은 늘 빠듯했고, 간신히 버티며 살았다.

이 시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됐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 그럴듯한 자기 계발서의 서문이 됐겠지만, 나는 그저 형편이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안분지족 하면서 작은 가치에 만족하는 삶을 살지도 못했다. 요새 유행인 욜로(YOLO)도 마음만 있을 뿐 대부분 시간은 걱정거리를 안고 산다. 가끔 뉴스에서는 장애를 극복하고 남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들이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된다. 나와 동갑내기인, 팔다리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희망 전도사’ 닉 부이치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모두가 닉 부이치치처럼 될 수는 없다. 몸의 장애와 마찬가지로 돈이 부족한 삶을 모두가 극복할 순 없는 노릇이다. 우리 모두가 워런 버핏이 될 수는 없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

     

내가 어릴 적 아빠는 사업이 ‘폭망’해서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해지자 지인의 추천으로 중고차 딜러를 했다.  우리 네 형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복도식 아파트에서 저벅저벅 아빠의 발소리가 들리면, 신발장 근처에서 놀던 우리 형제는 “아빠 왔다!” 하고 기뻐했다. 그리고 아빠가 문을 열면 합창하듯 소리쳤다.

언니· 나: “아빠, 한 건 했어?”

두 동생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서 복창했다.

“아빠! 했어?”

 

엄마는 아빠에게 잘 다녀왔냐는 인사 대신에 그날 중고차 한 대를 팔아서 십만 원 정도 하는 중개료를 받았는지부터 물었던 것이다. “여보, 한 건 했어?” 엄마가 하는 걸 그림자처럼 베끼던 우리들은 그 말마저도 그대로 따라 하게 된 것이었다. 아빠가 씩 웃으면서 점퍼 안주머니에서 ‘배춧잎’을 꺼내 보이면 우리는 “와~” 하고 손뼉 치고, 아빠가 고개를 저으면 우리는 고개를 떨궜다. 한 건 하지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런 날 저녁 밥상에서 우리는 엄마 아빠 눈치를 보며 수저 소리도 잘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인정해야 한다. 인생은 실존이다.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뒤돌아보면 많은 것들(거의 모든 것)에 돈이 영향을 미쳤다. 일단 뭘 하든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부터 해결해야 했다. 낭만은 그다음 문제였다. 그렇게 후순위로 미루다 보면 우리 삶의 낭만은 언제,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숨이 나기도 한다.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전했다가 크게 다치고 나서 문명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작품에 녹여냈다. 그런 부조리한 세계를 짚으면서도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스토리를 썼고,  운명에 지배받지만은 않는 강한 인간을 그려냈다. 그렇게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인간들은 매번 승리하지는 못했다. 번번이 패했다.《노인과 바다》에서 혼신을 다해 잡은 고기가 앙상하게 뼈만 남았을 때 소년이 노인에게 말한다.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에요. 고기한테 지신 게 아니라고요.”  


헤밍웨이의 소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자주 무너지고, 때때로 피하고, 무력하게 패배를 하면서도 ‘당신 같은 사람, 여기에 또 있다’고 담담히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패배자에게 ‘품격 있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점점 쪼그라드는 등을 좀 펴자고 다독여 주고 싶다.    

소설에 나온 술 마시는 외로운 노인은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이 짧은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카페에 오기 며칠 전에 자살을 기도했다가 조카딸에 의해 구조됐다는 얘기만 웨이터들의 입을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카페를 나서는 노인의 비틀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웨이터들은 그가 어딘지 품위가 있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문제 그다음의 문제로 넘어가서 뭔지 모를 고민과  (어쩌면) 공허함을 느끼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노인을 부러움과 약간의 측은함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여행기처럼 쓰는 돈 이야기' 매거진은 ➁편으로 이어집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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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책 소개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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