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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y 24. 2019

가오리보다는 상어

여행기처럼 쓰는 돈 이야기 

어느 글에서 보니 상어는 태어났을 때부터 몸에 부레가 없어서 가만히 멈춰 있으면 죽는다고 한다. 평생 부지런해야 하는 팔자인 것이다. 물에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는 잠을 잘 때마저도 계속해서 조금씩이라도 헤엄을 쳐야 한단다. 영화에서 보인 카리스마와 달리 실제론 고단한 운명 같아 보인다.  


밥벌이를 멈추면 얼마 안 가 컥컥거리는 우리들도 고단함으로 치면 상어 못지않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고, 멈추면 죽는다. 금 수저를 물었거나 복권 당첨자 빼고는(상어의 일부 종은 부레를 달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엔 예외란 게 있다), 나머지는 제 몸뚱어리에서 나오는 노동력에 기대 목숨을 이어가야 한다.   

     

나는 11년간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았다. 회사 노조가 파업했던 석 달을 빼놓고 매달 25일이면 꼬박꼬박 통장에 일정액이 박혔다. 학생에서 회사원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처음엔 월급이 적지 않다고 느꼈지만 한두 해가 지나고 나니 씀씀이도 꼭 그만큼 커져서 남는 것도 없었다. 돈이 모일만 하면 돈 쓸 일이 생겼다. 민족 대 명절이 있거나, 가족의 생일이 있었다. 여름에는 휴가 때 친구들과 여행을 가야 했다. 겨울이 오면 근사한 코트 하나는 장만해야 했다. 그것을 사치이거나 과소비라고 누가 비난했다면 나는 길길이 화를 냈을 것이다. 애쓰며 일한 나에게 합당한 수준의 보상이었고, 생활비에서 플러스 알파로 더 쓰는 소비는 내가 일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월급을 보며 난 점점 억울해졌다. 받는 돈보다 더 일하는 기분이었다. 회사에 들어간 이후 나의 저녁은 수시로 증발됐다. 금요일쯤 되면 다양한 각도의 펀치에 흠씬 두들겨 맞은 그로기 상태 복서였다. 토요일은 쉬는 날보다 일할 때가 더 많았다. 그렇게 일하고 일요일이 되면 하루 종일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휴일에 친구와 약속을 잡아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있어도 2로 시작하는 회사 전화번호 앞자리가 발신자 번호로 뜨면 순식간에 온몸이 경직됐다. 어떤 상사는 전화를 늦게 받는 것에도 짜증을 냈기 때문에 신호음이 세 번을 넘기기 전에 받아야 했다. 군대처럼 관등성명을 대지 않는다고 혼내는 상사도 있었다. 나는 점점 불만이 커져갔다. 과연 내 젊음을 담보로 하는 대가가 이 정도뿐이란 말인가. 사생활도 포기하고 일에 매달리는데 왜 겨우 먹고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월급밖에 받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건, 내 인생을 통째로 담보 잡힌 대가로 월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

불만은 컸지만 그래도 사회적 안전망이 허술한 우리나라에 살면서 매달 꼬박꼬박 같은 날에 돈이 들어온다는 건 큰 안도감을 줬다. 엄마는 나에 대해서는 별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음식점을 연 언니를 자주 걱정했다. 날이 좋으면 사람들이 다 놀러 가버려서 손님이 없으면 어쩌나, 비나 눈이라도 오면 또 그것대로 걱정거리였다. 주변에 작은 축제라도 열려 갑자기 손님이 몰리고 있다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몸이 축나지 않을까 한숨을 쉬었다. 제때 월급이 나오고, 일을 더하면 수당도 나오는 나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엄마는 확실히 우리 세대보다 훨씬 월급의 힘을 맹신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확신을 갖고 회사를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겐 몸뚱어리에서 나오는 노동력 말고는 다른 어떠한 생계수단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적어도 수천만 원의 목돈이 있어야 했고, 한번 넘어지면 재기가 힘든 게 이곳의 현실이었다. 내겐 그럴 만한 용기도, 뾰족한 아이템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회사가 싫다고 뛰쳐나가서 밥벌이의 의무조차 외면하는 무책임한 이들을 많이 목격해왔고, 그들과 혈육 관계란 이유로 부담을 져야 했던 선량하고 온정적인 가족들의 피해 사례를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무모한 도전으로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벌지 못해도 일이 년을 버틸 만큼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버텼던 그 시간들에는 이제 떳떳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시간의 짙은 농도는 아마 내 삶의 다른 어떤 시기보다 더 치열했기 때문이다.    


열심을 다해 부지런했던 시간들을 망망대해의 상어에 빗대 생각하니 그럴듯해 보인다. 가오리란 놈도 부레가 없다고는 하는데, 음..... 납작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가오리 말고, 카리스마 있는 상어로 나 자신을 생각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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