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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님 May 30. 2021

5월의 독서기록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올해의 열세번째 책.

장류진 작가의 이전 책인 ‘일의 기쁨과 슬픔’이 현실적인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베이스라 워낙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서 신간이 나온다고 했을 때 기대감이 꽤나 컸다. 그러나 이번 책은 워낙 투자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공감이 별로 없는 나여서일까, 비현실적인 부분에 있어 전작 대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인생의 한방을 역전한다는 게 이렇게 스무스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비관적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전작 대비 그런 현실감이 덜 느껴져서 매력이 덜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닿을 수 없지만 직장인들이 한번쯤 꿈꾸어본 것을 솔직하게 담아보았다는 점은 견주어볼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 또한 마냥 해피엔딩이 아닌, 현실적인 부분까지 담고 있었다는 부분 또한 마찬가지. 그리고 무엇보다 책 제목은 그러한 소망을 담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열기가 비집고 나갈 숨구멍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구멍은 클 필요도 없다. 아주 살짝, 가느다란 틈새만 만들어주면 된다.
나는 1말고 1.2를 원했다. 그 추가적인 0.2가 내게는 꼭 필요했다. 나는 얇지만 깊고 아늑한 그 0.2에 분명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냥, 인생 자체가 그랬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
이 동그라미가 마치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포털의 입구처럼 여겨졌다. 굳게 잠겨 있던 출입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비로소 활짝 열리는 기분, 그 밖으로 발을 가볍게 내디디는 느낌이 들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몸이 가벼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 욕심에 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하고 나면 이제는 저걸 하고 싶고, 저걸 하면 그다음 걸 하고 싶어졌다. 한계가 없는 내 욕망이, 그 마음들이 왜인지 창피했다.
우리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해 있는 동안 현실을 잊고 무한한 속도감을 만끽하며 질주할 수 있지만 약속된 짧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의 삶으로 복귀해야 한다.




삶을 읽는 사고 - 사토 다쿠

하루 휴가를 내고, 전시를 보러 가던 길에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구입하여 읽었다.

한동안 업무로 인해 딱딱해진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 책. 늘 자신의 주관을 지키는 것, 그리고 개성적인 것만이 디자인이나 삶의 자세에 있어서 가장 맞는 것이라 생각헀다. 그런데 작가는 이 책에서 디자인 (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 아니 더 나아가 삶일 수도 있다.)에 대해, 그보다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소성적 태도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이 더 어려우면서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 본인의 자아는 어느정도 억제하지만 그럼에도 감춰지지 않는 본인의 개성이 있기에, 그 개성을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자 좋은 관점이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태 갖고 있던 하나의 편견을 허물어지게 만들어주어 그게 참 좋았던, 올해의 열네번째 책.


그때마다 받은 인상을 잊지 않고 짧은 문장으로 언어화해두었다. 그것은 나중에 발상의 원점과 연결되었다. 그때그때 느낀 감각과 감정을 놓치지 않고 언어로 기록해두는 태도는 디자인 작업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신을 잃지 말라, 항상 자신을 유지하라, 자신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즉 '탄성'적인 방향에서 자기실현을 지향하라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 '소성'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자기 형태는 어떻게 변하더라도 상관없다, 그때마다 상황에 맞추어 변화를 보여도 괜찮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애당초 '자신'이란 무엇일까? 자기의식은 어디에서 오고 자신은 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런 기본적인 인생의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신에게 어떤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일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자신의 형태를 어떻게 정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자아를 아무리 억제해도 개성은 확실하게 드러나며 그래야 진정한 개성이다.
소성적인 건 단순히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무턱대고 부화뇌동하는 것도, 더 나아가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유행을 좇는 것도 아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상태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갖춘 능력을 이끌어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대상으로부터 그 가치를 이끌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자기 마음대로 가치를 부가해버리는 사람은 대상에 이미 존재하는 가치를 제대로 이끌어내는 게 아니다.
디자인은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된 물건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관계 속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가치관은 모두 다른 만큼 각자의 가치관과 관계성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영역에서 멈추는 게 디자인의 역할 아닐까. 거기서 '여유'가 탄생한다.
이미 완성된 내용물 자체를 출발점으로 삼아 디자인하는가, 디자인적 발상을 원점으로 삼아 상품을 개발하는가,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프로세스는 전혀 달라진다. 디자이너에게는 자아를 억제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그때마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소성적 유연성으로 순수하게 대응하는 다양한 스킬이 필요하다.
자신의 무력함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이론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자연에게 배우는 쪽이 훨씬 납득하기 쉽다. 파도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적당한 파도가 찾아오지 않으면 오직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연의 리듬에 맞추면서 즐기는 것. 자신을 우선하는 대신 환경을 먼저 파악하고 신체가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놓기 위해 평소에 자신을 단련해두는 것. 이것이 바로 디자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공간의 미래 - 유현준

올해의 열다섯번째 책. 유현준 작가의 ‘공간의 미래’.

좋아하는 작가라 신간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렇게나 읽기 힘들 줄이야. 공간에 대한 분석은 너무 좋았는데 제안한 개선점들은 전반적으로 뭔가 아쉬운 느낌이라, 완독하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도 코로나 시대 상황에 따라 고려해볼만한 것들, 현재 상황들에 대한 분석이나 숨은 심리에 대한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고 무조건 적인 새로운 것보다는 기존 공간들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코로나 시대에 진행되는 온라인 회의에서 화면을 끄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본인이 더 우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분석은 신선했고, 재택근무가 연장되면서 조직 내 구성원들의 필요성이나 효율성이 더 부각된다는 점에서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건축이라는 분야는 단순하게 건물 자체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까지 해야한다는 점을 늘 떠올리게 하는 작가님이기에, 작가님의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주는 것 같다. 사람의 삶의 모습이 건물의 마감재가 된다는 좋은 문구를 읽으면서 이전에 회사 특강에서 말씀주신 ‘공간에도 총 용량이 있으니 변화가 필요하다’라는 정말 좋았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전 책 대비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매번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되는 작가님의 책인 것 같다.


형식과 본질은 구분되어서 이해돼야 한다. 오히려 종교에서 형식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구분하여 이해함으로써 더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공립학교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교육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토론부터 시작돼야 한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개인별로 업무의 계획과 실행이 명확해져 기존에 큰 조직 내에서 무임승차하던 사람들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개인의 업무 수행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천천히 걸을수록 좋고, 물류는 빠르게 이동할수록 좋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보내는 것이 지상을 '인간을 위한 느린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코로나 이전부터 혼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집 이외의 취미 공간을 만드는 유행이 시작됐는데 이러한 현상은 전염병이 일상화되면 여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다.
건물 사용자들은 발코니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화분을 놓고 꾸미게 된다. 사람의 삶의 모습이 건물의 마감재가 되는 것이다.





5월에는 소설부터 에세이 등 다양한 책을 접한 것 같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나는, 변화하는 이 코로나라는 시국에 내가 가지고자 하는 마음가짐 위주로 느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번달에 읽었던 책들은 전반적으로 아쉬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좋았던 문구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살펴보니 좋았던 부분들도 꽤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매달 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한달의 기분이나 감정 변화도 살펴볼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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