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사실 날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비가 오게 되면 우산을 들고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푸르른 하늘을 기대했던 예상을 깨뜨리며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베네치아에서는 꼭 곤돌라를 타고 말꺼야'라는 로망을 잔뜩 안고 곤돌라를 함께 탈 멤버를 모두 구성한 후에, 안개가 잔뜩 끼어 한치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의 허무함과 허탈감은 이루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행 중 그렇게 만난 예상치 못한 날씨가 정말 멋진 장관을 이루어낼 때가 있다. 여행 중에 만났던, 그러한 장관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호엔 잘츠부르크성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이 정말 멋지다고 했다. 잔뜩 기대를 품고 올라섰던 그날, 때마침 오스트리아에 내리자마자 잔뜩 쌓였던 눈이 조금 원망스럽게도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눈깨비처럼 기분나쁘게 내리던 눈은 잘츠부르크성에 올라선 순간에도 잔뜩 내렸고, 패딩 모자를 덮어써야만 앞이 보일 수 있을 정도였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경관에 대조된, 심지어 안개까지 잔뜩 낀 잘츠부르크 시내는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또 언제 이런 경관을 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스위스같은 분위기를 잔뜩 내뿜었던 잘츠부르크에서의 추억.
리스본에 도착하자마자, 리스본의 중심인 코메르시우 광장에 들렸다. 그런데.. 푸르른 강과 하늘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기대했건만, 커다란 먹구름이 껴있었다. 파란 하늘과 먹구름이 공존해 조금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던 리스본. 그러나 나름, 해가 질때쯤 반짝이던 강과 마주한 그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던 곳이었다. 이곳은 야경을 보기에도 좋고, 해가 막 지는 노을을 보기에도 괜찮다. 아마 리스본에 머무는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들렸던 곳이었던 듯. 맑은 날에 보면 장관인 곳이지만, 일주일 내내 머무며 흐린 날도 마주쳤던 추억이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소나기가 내린 직후, 하늘과 공기가 가장 맑은 느낌이 나는 그 때. 파리에 머물 때 소나기가 종종 내렸었다. 그렇게 소나기를 피하고 나면, 먹구름 사이로 반가운 햇빛이 나오게 되고. 촉촉하게 젖은 거리의 바닥 물기 사이로 비치는 그 햇빛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너무 좋았다. 특히 비 내린 직후의 맑은 공기는 정말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 순간을 늘 카메라에 담아뒀다. 다른 유럽에 비해 파리가 종종 이렇게 소나기가 내리곤 했다. 파리 특유의 분위기가 그 찰나와 너무 잘 어울리던 순간들이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 여름 내일로 여행을 정말 즐겁고 알차게 잘 마무리지고 겨울에도 마지막으로 또 내일로 여행을 떠나자! 해서 떠났던 겨울 내일로 여행. 그리고 동해로 떠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폭설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내린 눈 탓에 강릉에서 대관령까지 오는 버스도 돌아서 운행을 해야했고, 대관령에 도착하고서 발이 푹푹 꺼지는 현상을 마주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올라간 대관령 양떼목장의 풍경은 정말 절경이었다. 한국에서 알프스를 마주한 느낌. 정말 너무 예뻐서 한참을 감동했다는 사실. 하늘이 이렇게 하얀 순간을 본적이 있는가.. 그리고 정말 영화 러브레터의 한장면처럼 드러눕고 신나게 놀고.. 내려올 때 눈이 점점 더 거세져서 거의 기어내려왔다는 사실_^_ 고생한만큼 추억이 잔뜩 남아있는 곳이다.
내게 파리=몽마르뜨언덕과 에펠탑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꼭 봐야만 했던 에펠탑과 몽마르뜨 언덕. 팔찌 채우는 흑인아저씨들이 많아! 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무릅쓰고 뒷길로 아름아름 걸어갔던 이곳.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푸른 지붕들이 잔뜩 채워진 파리 시내는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반대로 먹구름이 가득한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먹구름 사이로 조금씩 듬성듬성 비치는 햇빛마저도 너무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파리에서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였던, 몽마르뜨 언덕에서의 먹구름.
교토에서 한참 신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먹구름이 강에 비치고 있었다. 강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아기자기한 가옥들과 강, 그리고 그 먹구름의 조화는 보는 나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여행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이 좋았다. 특히 그러한 순간들이카메라에 더욱 잘 담아지게 되면,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교토의 이름모를 강에서 마주쳤던 먹구름들의 절경.
포르투갈의 포르토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곳, 도우루강 뷰가 예술이었던 아파트 숙소에서의 시간들이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느라 조금은 시끌벅적했던 리스본의 민박에서의 여운을 둔채, 이곳 포르토에서는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아침부터 밤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도우루강이 너무 예쁘게 보이는 이곳은 정말 환상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었다. 포르토에 도착한 날, 구름과 해가 공존했던 해지는 시각에 바라본 도우루강의 뷰는 정말 예뻤다. 구름이 촘촘하게 맺혔던 하늘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던 추억이 스물스물 떠오르기 시작한다.
제주도 용눈이 오름에서 보는 일출이 정말 예쁘다고 했다. 밤새 술마시며 친해진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의 봉고에 타고 아침 일찍 기대를 품고 갔던 용눈이 오름. 그러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잔뜩 낀 먹구름이었다. 아쉬움에 아쉬움을 한참 내비쳤는데 서서히 개기 시작하는 먹구름 너머로 일출이 보이고 있었다. 저멀리, 마치 하늘을 가는 길처럼 보이는 햇빛이 너무나 예뻐서, 우리는 아쉬움도 던져버리고 한참 이곳에 앉아있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예상치 못하게 만난 일출의 작은 반가움. 그때의 그 감동과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저녁이 다가올 무렵 걷고 있었다. 소나기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던 시각,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개선문 뒤로 보이는 노을과 말끔한 하늘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정말 한참 이곳에 서있었는데 해가 쏙 들어가버리며 남겨진 먹구름과 낮과 밤이 공존하는 그 시간대의 하늘과 개선문의 조화는 정말 더욱 아름다웠다. 쇼핑에 흥미를 잘 못느끼는 내게, 샹젤리제 거리에서의 또다른 추억을 안겨준 고마웠던 순간. 사진을 보니 다시 떠오르는 그 순간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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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순간들이 먹구름과 오묘하게 어울리던 시각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먹구름이 보이게 되면 아쉬워지는 마음과 달리, 예상치 못하게 예쁘게 어우러지는 풍경들에 감탄을 자아냈던 순간들이 있어 공유를 해보았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마주하는 것 또한, 아쉬우면서도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