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소득세를 다달이 떼는 것이 아니라 합산하여 일 년에 한 번 낸다. 연봉을 딱 12분의 1로 가른 금액에서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조의 금액, 1200 싱달러를 빼고 매달 같은 월급이 통장에 들어온다. 싱가포르는 소득세가 높진 않지만 일 년에 한 번 몰아서 내다보니 정신적 충격 (?)은 상당한 편.
4월에 작년 소득 정산하여 신고하고 얼마 전 작년 소득에 대한 세금이 청구되었다. 교수 월급이야 뭐 거의 어르지도 않고 고소득도 아니라 매년 비슷한데 남편은 작년에 보너스를 좀 받았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5배는 더 많은 세금이 청구되었다. 보너스를 월급의 5배 받은 것도 아닌데 워낙 소득이 오를수록 세율이 급격하게 오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너무 슬퍼하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세금 많이 내는 건 자랑스러워할 일이라구. 능력 있다는 훈장으로 생각하고 얼른 내.
나는 아이를 낳은 후에 세금에 대해서 처음 생각해 본 것 같다. 한국에선 회사의 말단 직원 또는 시간강사가 내 경력의 전부라서 월급도 쥐꼬리, 세금도 쥐꼬리였다. 싱가포르에서도 첫 해 연봉은 많지 않아서 세금도 그다지 충격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생활 속에서 내 세금이 사용되는 곳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유모차가 다니기 쉬운 보도블록, 버스정류장 간격, 동네 주민센터의 저렴한 수업들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유치원 지원, 유치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복지 지원,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많은 아이들의 생활에 대한 지원까지… 사실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복지가 결국은 내 아이의 삶에 너무나 가까이 맞닿아 있었다. 근무 환경이 좋은 유치원 선생님은 내 아이들에게 더 즐거운 마음으로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사랑을 준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는 유치원 친구들은 내 아이에게 더 친절하게 대하며 긍정적인 커뮤니티를 경험하게 도와준다. 심지어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조차 안전하고 기본권이 잘 보장된 사회에서는 서로에게 친절하며 도움을 주는 걸 기본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난 세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내가 낸 세금이 나한테 직접 돌아오지 않더라도, 내가 당장 혜택을 받지 못해도, 그게 전부가 아니었건 것이다. 내 아이를 아무리 끼고 돌보고 집에서 아껴줘도 그 아이들이 부대끼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단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특히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고 같은 걸 보면 더 그 생각이 강해진다. 아무리 내가 아이를 안전하게 돌봐도, 불행한 누군가가 잘못된 선택을 하면 내 아이까지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 사람들까지, 가능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건 망상일까?
세금 좀 내면서 이런 세상을 욕심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