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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Aug 18. 2023

친절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독일에서 돌아온 지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다. 그새 방학도 끝나고 새 학기도 시작하였다. 긴긴 여행이 끝난 후의 한 달을 돌아보니 나에게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음... 조금은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일상에서 시간 단위로 쪼개 하루 계획을 세우는 나로서는 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상황이 제일 싫다. 내 몰스킨 다이어리에는 시간 단위로 계획이 정해져 있고, 마친 일에 대해서는 딱 X로 표시를 하는 게 내 인생 낙이니 이게 늦어지거나 계획에 맞춰 시작되지 않으면 그날 하루는 완전 기분 꽝이다. 이런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때는 여행! 여행 중의 나는 한없이 여유롭고 관대하고 친절하다. 여행 중엔 모든 게 허락되고, '여행 중이니까'라는 말로 모든 게 용서된다. 잠깐 왔다 가는 곳에서 '이것도 다 추억이지, 그럴 수도 있지'의 태도로 지내다 보면 그리 마음 불편할 게 없는 듯 느껴진다. 독일에서나 영국에서 있는 동안 기차가 늦어도,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고, 계획한 걸 못 해도 '난 항상 즐거워~' 모드였으니 일단 가족들이 너무너무 좋아했다. 특히 평소에 빡빡하게 굴던 엄마가 독일과 영국 생활 내내 잔소리하질 않으니 아이들이 아주 행복해했다. 한편 난 그걸 보면서 참으로 반성이 많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불필요하게 빡빡하게 살지 않았는지...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싱가포르에 돌아온 후, 친절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나 자신에게, 또 주변 사람들에게! 물론 인간이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요즘 남편과 툭탁거리는 일이 거의 없는 걸 보면 결심을 어느 정도는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늦게 집에 들어가는 날에도 들어서자마자 집 안 청소 상태, 설거지 상태를 제일 먼저 눈 부라리고 보기보다는 우선 가족들과 좀 더 정다운 말 나누고, 중학교에 입학한 딸에게 하루 생활을 자세히 듣는다. 그러다 보면 좀 더러운 바닥도, 설거지 안 된 그릇도 잊어버려서 마음 불편할 일이 사라져 버린다.


물론 내 몰스킨 다이어리에는 여전히 시간 단위별로 계획이 쓰여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도 약간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살다 보니 나 자신이 편하다. 내 일상도 다 추억이지, 그리고 그럴 수도 있지. 오늘도 친절하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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