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놀자
요즘 한국은 폭설로 난리라고 한다. 사는 사람들은 출퇴근에, 한파 대비에 힘들겠지만 열대우림 기후대에 살고 있는 나에겐 눈이 펄펄 오는 영상이 현실감 없는 설경이라 낭만적이기만 하다.
반면 싱가포르는 최근 몇 달 동안 계속 비가 온다.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 빨래와 개미에 정말 스트레스가 많은 데다가 운동하러 나갈 수 있는 시간도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날씨가 정한다ㅠㅠ
어제 저녁에도 남편이랑 저녁 먹고 산책 나가기로 약속했는데 저녁식사 시간부터 비가 좍좍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비는 밤새 쏟아져 잠귀가 예민한 난 서너 번 깨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은 일요일 아침인데도 피곤하고 기분이 다운…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 아침부터 스콘을 구웠다. 집안에서 나는 고소한 빵 냄새는 그 어떤 냄새보다 좋다. 가족들과 늦은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나자 힘이 나서 빗속을 산책할 마음까지 동하였다. 장화에 우산을 챙기고 나와 집 근처 공원을 지나 green corridor로 향했다. 이 길은 지금은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오래된 기찻길을 따라 조성된 숲길이다. 어제 아침에도 이 길 따라 조깅을 했는데 사람과 자전거로 너무너무 붐볐다. 하지만 어제부터 내린 비로 길도 안 좋고 하니 약간 무서울 정도로 사람이 없어 오늘은 혼자 길을 다 차지한 듯한 느낌
비가 젖은 나뭇잎들이 맨질맨질 이쁘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공원길인데도 열대 정글의 느낌이 남아 엄청나게 큰 잎들도 많다. 내 손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듯.
기차가 다닐 때 나름 붐볐을 길인데 지금은 길가에 남아있는 영국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빈 채로 폐허같이 보여 혼자 기웃거리기도 하니 어딘가 멀리 여행 온 느낌이 든다. 길을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빌 브라이슨의 오디오 북을 들었는데 너무 웃긴 기행문을 들으며 나 역시 오늘의 미니 여행이 더욱 신나고 모험처럼 느껴진다. 길을 걸으면 평소에 차를 타거나 뛸 때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오늘의 마이크로 어드벤처 (by Alastair Humphreys), 비가 와도 생각보다 즐거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