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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에 당하기 전 해야 할 일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하나 더

by Mmmmm Park

요즘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이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읽고 싶은 책들은, 가능하다면 번역본을 구해 읽는 게 제일 좋지만, 만약 아마존의 오디오북인 Audible에 그 책이 있다면 기다릴 필요 없이 쉽고 빠르게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영어로 듣기도 한다. 특히 이 책은 저자인 마이클 이스터가 직접 녹음해서 저자 직강의 느낌으로다가 재미있게 들었다.


이런 현재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의 패턴, 현대인의 의사결정 과정 등의 현상을 분석하는 대중 인문학서의 경우, 가만히 읽어 보면 결국 ‘무의식적 행동에 대한 경고와 초인지 능력에 대한 강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롭게 읽었던 대니엘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역시 습관적 행동이 우리의 인지 발달을 저해하기도 하고 초인지 능력을 퇴화시키며,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의 과정 및 이유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심리학적 설명을 대중을 상대로 풀어내는 책이다.

내 연구 분야도 마침 외국어를 접한 인간의 두뇌가 그 낯선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고 또 그 과정에 도움이 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를 주로 다룬다. 특히 왜 다언어 구사자들은 점점 외국어 습득이 쉽다고 느끼게 되는지 (실제로도 습득 과정이 빨라지고 정보 처리가 빨라진다), 심지어는 모국어와 완전히 다른 체계의 언어를 배울 때에도 더 잘 배우게 되는지가 주요 연구 주제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돌아보자면, 나는 성인이 된 후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를 여러 이유로 배우게 되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가’ ('수우미양가'의 '가', 결국 최하점)로 성적표를 장식했던 한자 성적에도 불구하고 중국어가 내가 자발적으로 배운 첫 외국어가 되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중국어를 배우게 된 이유는 앞서 다른 브런치 글에 쓴 적이 있다. 이후 일본어, 스페인어, 독일어 모두 자발적인 결정으로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중 스페인어가 가장 최근에 배운 언어이다. 올여름 마드리드에서 만난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은 나에게 너무 이해가 빠르다며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냐고 매일 칭찬을 퍼부으셨다. 사실, “대충 감으로 이해를 좀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아직 말은 하나도 못 해요..."진실이지만 칭찬은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우리가 성인이 되어서 언어를 계속 공부하다가 보면 언어들의 비슷비슷한 점이 금세 눈에 뜨이게 된다. 어차피 언어는 달라도 인간의 도구라는 측면에서 작동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문법이 좀 다르긴 해도 그 방식은 결국 전에 배웠던 그 원리를 적용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linguistic sensitivity (언어적 민감성)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우리가 언어적 정보를 처리한 경험이 있으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에는 더 적은 양의 데이터를 가지고도 문법 패턴을 빨리 파악하게 되고 결국 더 빠르게 습득하게 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즉, 그 비밀은 문법 패턴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두뇌의 작동 능력인데, 이 과정에서 초인지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초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언어를 배울 때에도 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편안함의 습격]에서도 마이클 이스터는 나이를 먹어도 계속 뭔가를 배우게 되면 우리가 인지적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에 인지 능력이 점점 더 좋아지고 따라서 [편안함의 습격]에 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아는 대로 이해한다고,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AI 시대가 와도, 파파고 번역기가 아무리 발달해도, 심지어는 미래에 개인용 동시통역 도구가 생긴다 해도 언어를 배우는 것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단순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고!‘라고 이해했다.


과학적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에든버러 대학교의 토마스 박(Bak) 교수는 이미 오랫동안 성인이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경우 치매가 걸리는 나이가 늦춰진다는 근거를 여러 연구 방법을 통해 밝히고 있다. 내가 직접 연구한 데이터에 따르면 다언어구사자들의 경우, 외국어 학습에서 과정에 대한 성찰 능력이 뛰어나고 내가 알고 있는 언어를 동시에 처리하면서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서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을 때에도 두뇌는 영어나 중국어 정보도 끊임없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지적 부하는 당연히 '편안함'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하나의 현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내가 아는 영국인 친구는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가족들과 십자말풀이를 즐겨하는데 그러면서 새 단어를 배우기도 하고 평소 안 사용하는 단어를 다시 환기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영국 신문에는 여전히 십자말풀이가 실리고 서점에도 각종 십자말풀이 잡지가 쌓여있다. 이처럼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내게 이미 익숙한 언어 역시 새롭게 사용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나 역시 외국어 학습에서는 끊임없이 도전하지만, 정작 운동이나 식습관에서는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마흔 살이 넘으면 근력 운동이 중요하다는 건 많이 들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만 주야장천 하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편안함의 습격에 당해버린 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내가 안주하고 있는 측면은 어떤 부분인지,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편안함에서 탈피해야 할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알래스카 여행이 첫 장면에서 나오길래 어떤 신체적 편안함을 주된 문제로 다룰 줄 알았는데 점차 정신적 편안함, 심리적 안주에 대한 고민과 시선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유발 하라리도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 능력이 우리 삶의 중심이자 중요한 가치였던 수백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2차 산업 혁명 이후, 더 최근에는 아이폰의 등장 이후 그 짧은 몇 백 년 사이에 우리의 삶의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신체 능력보다 중요하게 등장한 다른 가치들이 우리의 추구미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체와 생리적 메커니즘이 AI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진짜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AI시대를 바꿔야 하는가, 나를 바꿔야 하는가?


사실 시대를 바꾼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소로우의 [월든]처럼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반대로 AI 시대의 혜택을 최대한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연구자로서의 입장이다) 열망도 있으니 참 대답을 찾기엔 아직도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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