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승결'의 인생, 체호프의 단편집

by Mmmmm Park

요즘 체호프를 다시 읽고 있다. 전에 읽었던 민음사 전집 중 [체호프 단편선]에 실린 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땐 황당하게 우습고 ‘이게 뭐야!’라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기-승-승-승 하다가 ‘전’을 빼먹고 ‘결’로 가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번 고전살롱 독서 모임에서 체호프를 읽는다고 하시길래 순간적으로 ‘저도 할래요!’하고 손을 들고 말았으니 체호프가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은 정말 확실한 듯하다.

이번에 읽는 단편집은 녹색광선 출판사의 [낯선 여인의 키스]라는 제목으로 나온 단편집이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은 사실 읽어 본 적이 없어서 더 흥분이 됐다. 그런데 읽다 보니 확실히 [체호프 단편선]의 단편들과 [낯선 여인의 키스]의 단편들은 결이 다르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편집자들이 이렇게 묶은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소설에 흐르는 체호프의 감정이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체호프 단편선]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소설은 ‘내기’였다. ‘내기’는 주인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남자의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특별한 이벤트 없이 주욱 묘사했는데 정말 중간까지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높은 곳으로 덜덜덜 올라가다가 곧 떨어질 걸 기대하고 꼭대기에 도착해 보니 아래로 확 떨어지지 않고 그냥 평지가 이어지는 밋밋한 느낌의 결론으로 끝나버려 헛웃음으로 소설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하지만 [낯선 여인의 키스]에 실린 단편 중 ‘귀여운 여인’은 인물의 다방면적 매력 때문에 읽는 내내 주인공 올레카의 감정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제목이 흥미로워서 영어 제목과 러시아어 원서 제목을 찾아보았는데 영어로는 ‘The darling’이라고 했고 러시아어로는 Душечка (Dushechka) 란다. 올렌카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발그스레하고 통통한 볼, 점이 하나 있는 하얗고 부드러운 목, 순진한 미소'로 묘사되어 마치 러시아 인형 마요르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끝으로 가면 그녀의 중년은 '키가 크고 뚱뚱한 여자'로 보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사랑에 빠질만한 상황이 아닐 때 두 번의 사랑에 빠지고 사별을 하고, 또 썸 타던 젊은 수의사, 스미르닌은 부대와 함께 떠나버린다.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올렌카는 왜 이렇게 사랑을 하기가 힘든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미르닌은 자기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올렌카를 찾아오고 바쁜 그 부부를 대신해 그들의 아들을 돌보며 이번엔 그녀의 애정(?)을 아이에게 쏟아붓는다. 흠... 이쯤 되면 그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놀음'이라 해도 무방할 듯. 중요한 건 그 사랑놀음을 즐기는 올렌카, 모습도 밝고 아름다워지며 행복해하니 사실 이것도 능력이다 싶다. 어떻게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남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영어판에서 묘사한 것처럼 selfless 올렌카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쏟아 부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게다가 이런 올렌카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귀여운 여인'으로 비치니 모두가 윈윈인 것 같기도...


'귀여운 여인' 역시 체호프답게 '전'이 없는 스토리였지만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를 따라가면서 마지막에선 어쩐지 그녀의 삶의 아이덴티티를 나 역시 받아들이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다. 아... 평생 이렇게 흔들림 없이 같은 캐릭터로 살아간다면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일단 본인이 행복하다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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