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기 유학을 사회 현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영어가 갖는 경제적, 사회적 파워 때문에 조기 유학을 떠나는 부모, 심지어는 기러기도 마다않는 가정이 많은데 실제로 결국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들었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만족도가 떨어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외국에서 살다보니 아이들의 모국어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이도저도 안 되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 실력이 생각보다 늘지 않아 한국에서 학업 성취도가 높았던 아이들도 학교 공부가 어려워지고, 그러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도 불쑥불쑥 드는데 모국어 실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마니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
또, 다른 논문에서도 확인해 보니 미국의 National Education Association (국립 교육 협회)의 2020년 발표에 따르면, 미국에 사는 8세 이하 어린이들의 32%가 집에서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이중 언어 구사자라고 하였다. 문제는 영어의 숙달도가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이것은 집에서 영어만 쓰거나 외국어를 쓰거나 상관이 없이 동일한 연구 결과이다. 즉, 영어 실력이 좋아야 학업 성취도도 좋은데, 실제로 이 아이들 중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도 못 따라가는 학생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물론 이 중에 저학년 때 빠르게 영어 실력을 높여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체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똑같기 때문에 이에 도달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또한 이 영어 실력 향상+학업 성취도의 경우, 집안의 경제 상황, 어머니의 학력, IQ 등과 상관 관계가 높기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한다는 가정하에는 다양한 요소를 이겨내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최근, 주변에 교포 2세로써 교포 3세 아이를 키우는 한국계 엄마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40대의 교포 2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 부모들로부터 받았던 한국의 이중적 이미지에 아직도 갇혀 있었다. 도시락 반찬로 김치과 멸치를 싸 주고 부모에 대한 한국식 예의범절을 강요하면서, 한국어를 쓰지 못 하게 하고 한국 교육을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비판했던 그들의 교포 1세 부모. 따라서 교포 2세로 자라며 한국어를 배울 기회는 부모님들과의 대화뿐이었고 게다가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그들의 부모가 선택한 문화만 접할 수 있었다. 즉 필터된 문화 접촉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교포 2세 엄마들은 일단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하지만 말하기는 자신없어 했는데, 결혼은 또 한국계 교포와 했고 아이들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반면 본인이 한국어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면서도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매우 어려워했다.
조기 유학, 교포 2세들, 모두 부모님의 엄청난 지원과 희생 아래에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 왔건만 남은 것은 좋은 영어 발음뿐, 사실 한국에서 낳고 자란 아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스펙트럼 안에서 살고 있다. 즉, 어린 시절, 해외에서 교육을 '영어로' 받았다고 해서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들보다 입시에서, 취업에서 소위 '성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좀 더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내 주변에는 해외에서 자라는 바람에 한국어를 잘 못해서 성인이 된 후 한국어를 다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지금 한국의 국력도 한 몫 했겠지만 결국 부정할 수 없는 문화와 인간성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 물론 좋다, 하지만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하게 알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원래 가진 것을 부정하고 남의 것이 따라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사회에 진정한 임팩트를 줄 수 있을까? 조기 유학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어 하나만 잘 해도 성공한 거라는 그런 마음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 많은 부모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