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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Jan 15. 2023

호찌민 아닌 사이공 여행

올해의 시작은 사이공에서 맞이하였다. 호찌민이 아닌 사이공.


베트남 여행은 세 번째, 사이공에 간 것은 두 번째이다. 두 번의 방문 동안 호찌민의 옛 이름이 사이공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던 나는 이번 여행 동안 내가 얼마나 역사 모질이였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대통령궁 (남베트남 시절)

사실 나에게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사이공이 아닌 달랏이었기 때문에 여행 전엔 달랏만 열심히 공부하고 랑비앙에 오를 기대로 출발! 사이공에서 하루 묵고 바로 달랏행 비행기를 탔다. 달랏 공항에 내리니 고산지대답게 티베트의 라싸처럼 하늘이 가까워진 느낌, 파아랗다 못해 깨져서 무너질 것 같은 하늘이 눈을 가득 채웠다. 고대하던 랑비앙 트레킹은 역시 우리를,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거의 해발 1400쯤에서 등산을 시작했고, 목표인 랑비앙 정상은 해발 2160. 구글 지도에는 3km 정도만 걷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막상 Strava로 찍어 보니 우리가 걸었던 길은 왕복 12km 정도였다. 중간까지는 차로도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길이 포장되어 있었지만 3km 후부터는 그야말로 산길. 중간중간엔 로프를 잡고 기어올라가야 하는 난코스도 있었다. 13살, 10살인 아이들은 올라가면서 신나기도 했다가 지치기도 했다가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결국 정상에 오른 후에는 다들 뿌듯한 마음을 감추질 못했다. 그렇게 베트남의 자연을 4일 동안 만끽한 후 다시 사이공으로 돌아와 거기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새해를 맞이했다.



여행의 매력은 의외성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생각도 못했던 것을 깨달으면서 여행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중독이 되어버린다. 이번 여행의 매력은 달랏에서 경험한 새로운 자연환경도 물론 포함하지만 의외로 사이공의 대통령궁과 전쟁 박물관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번 사이공 방문 때에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대통령궁과 전쟁 박물관에서 전시 자료를 읽어 보면서 가족들은 대화의 꽃을 피웠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전쟁,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영향 하에서의 기나긴 역사, 식민 시절... 사실 이런 역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북 베트남 사이의 전쟁에 세계열강이 깊이 관여했고, 또한 남베트남 대통령도 미국에서 공부한 친미파. 북베트남에서 내려와 남베트남을 점령하니 결국 슬그머니 발을 빼버린 미국. 그 사이 도망간 정치 지도자들. 탄압당한 남베트남 국민들과 보트 피플들. 사이공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승자의 지도자 이름으로 바꾸어 버린 잔인한 역사와 현재 각종 박물관에 세탁된 채 전시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


특히 전쟁 박물관은 미국으로 망명한 보트 피플의 자손인 베트남계 미국인 친구와 같이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 친구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박물관에서 설명하는 역사적 사실의 관점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비단 베트남뿐이랴!) 피를 토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남베트남의 공무원이셨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한 후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도망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50대인 내 친구가 젊은 시절 베트남에서 몇 년간 살아 보고 싶다며 돌아오길 원했을 때 베트남에 남아 있는 베트남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나쁜 놈 (우리 정부식으로 말하자면 빨갱이)인데 베트남에 가냐며 뜯어말리셨다고 한다. 결국 전쟁은 그냥 누가 죽고 다치고 재산의 피해를 입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대손손 그 상처가 남는 거였다. 내 친구는 현재 미국 NGO의 전문가 집단으로 베트남 보건정책 프로젝트에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애증의 관계로 남아서 베트남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는... 그런 상태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저녁에 만난, 하노이 출신이면서 미국에서 공부한 다른 베트남 친구에게 물었다.

"넌 이 도시를 호찌민이라고 불러, 아님 사이공이라고 불러?"

"둘 다 괜찮은데? 베트남 사람들은 둘 다 써."

조심스레 다시 한번 물었다.

"호찌민이라고 부르면 정복자의 프라이드를 느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북베트남 사람들이 은근히 남쪽 사람을 무시하는 건 있지. 근데 우리 세대 (30대임)는 그런 거 잘 생각 안 해."


몇 년 전 동독 출신 독일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 혹시 통일된 독일에서 차별받지는 않는지...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솔직하게 대답을 하였다.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독 악센트를 가진 사람은 서독에서 집이나 직업을 구하거나 할 때 항상 차별을 받는다고...

난 통일이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공감도 하고 우려도 한다. 아직도 우리의 통일이 어떠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이공을 호찌민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버린 것이 너무나 잔인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나부터 사이공이라고 불러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걸 생각하게 해 준 이번 여행은 오래오래 긴 여운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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