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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and Dec 06. 2022

엄마가 장기출장을 간다 하면...

얼마 전 기쁜 일이 있었다. 유럽의 한 대학에서 내 연구 논문들을 보고 함께 일해 보지 않겠냐며 나를 연구 펠로우로 초청한 것이다. 처음엔 1-2년 정도를 이야기했지만 나도 현재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사정도 있고 하여 일단 내년 봄에 3개월만 가서 대학원생들을 위해 워크숍을 해 주고 트레이닝 시키고, 같이 실험을 시작하는 정도로 계획을 했다. 

물론 초청을 처음 받고는 기쁘기도 했지만 가장 걸리는 것은 가족이었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좋은 기회인데 두 번 생각 말고 무조건 가는 방향으로 하라고 했고, 아이들도 엄마 없이 싱가포르에서 잘 지낼 수 있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 동안은 우리 가족끼리만 알고 있다가 이제 얼마 안 남아서 슬슬 주변에 나의 3개월 출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나의 부모님: 가족끼리 그렇게 떨어져 살아도 괜찮겠니?

남편 부모님: 우리 아들 힘들어서 어쩌니?

직장 동료: 애들은 같이 가요?

애들 친구 엄마들: 혼자 가요? 또는, 와, 좋겠다!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애들한테 같이 가자고 했더니 괜찮대요. 그리고 애들도 방학 하면 한 달은 유럽 와서 같이 지낼 거고, 요즘은 화상 통화도 날마다 할 수 있고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나의 출장을 정당화하고 내가 떠나 있는 것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열심히 어필하고 설명하고 변명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남들에게 이렇게 내 출장에 대해 변명을 하고 있는지 너무 황당했다. 그 누구도 첫 반응으로 내가 유럽에 가서 할 연구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내가 엄마의 역할을 무참히 내던진 채 무책임하게 장기 출장을 가면 그것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서만 궁금해 했다. 


그 다음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남자였어도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이들이 2살, 7개월 때 한국으로 한 달간 교육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난 너무 궁금하다.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같이 내가 출장 가는데 아이들은 어쩌냐는 반응을 보일까?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나마 가장 공감해 주는 사람들은 애들 친구 엄마들이었다. 우리들끼리는 '혼자 가니 좋겠다, 혼자 어디 가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나도 혼자 일주일이라도 있어 보고 싶다, 등등...'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면 천하의 몹쓸 엄마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서로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 하에 거리낌 없이 나누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가족이 상의해서 결정했으며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에게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나 사람들의 인식이 참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이런 말들을 듣고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말들에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 나 역시도 이런 생각들에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스스로를 점검해야겠는 생각을 해 본다. 

또 이렇게 하나를 배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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