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도 없던 독일 연구원 생활은 뮌스터 대학 영어과의 한 교수가 내가 하고 있는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나를 초청하며 시작되었다. 처음 초대를 받고선 독일 측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신청하려고 준비하는 동안에는 '설마 되겠어!'라고 반신반의하다가 막상 덜컥 연구비 신청이 성공했다는 결과 메일을 받고 나선 '아고, 일은 이미 터져 버렸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족 없이 혼자서 일년에 한 두 번 여행도 하고, 출장도 가지만 이렇게 길게 가는 것은 처음이다. 또한 이번엔 연구 측면에 있어서도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하고 (데이터 수집 >> 분석 >> 출판), 그 대학의 석박사 과정생들을 위한 세미나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부담이 적지 않았다. 처음엔 이번 기회가, 도전이 너무 설레기만 했고 또 혼자서 지내면서 공부하면 엄청난 성과가 날 것만 같은 기대에 부풀었는데 막상 비행기표를 끊고 세미나 주제를 보내고 등등 하면서 점점 부담이 밀려 온다.
'막상 가서 영어과 교수들이 나랑 이야기하다가 실망하면 어쩌지?'
'박사과정생들이 나보다 공부 더 열심히 하고 있을텐데 내가 더 모르면 어쩌지?'
'실제로 계획한 연구 성과가 안 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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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발 한 달을 남겨 놓고는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더 커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 외국어를 배울 때마다 그 언어의 공식평가를 신청해 놓고 공부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중국어 할 때에도 일단 초급 겨우 마친 후에 HSK부터 신청하고 중급을 시작했고, 일본어 할 때에도 일본 한 번 가 본적 없는 주제에 (아직까지도 못 가 봄) JPT부터 신청하고 공부했던 기억들... 그렇게 배수의 진을 치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번 학기가 1월에 시작된 이후 충분히 공부할 시간 없었는데, 이렇게 연구원으로 가니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더 공부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논문도 계속 쓰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하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고 사랑하지만, 현실에 치여서 충분히 즐길 여유가 없었던 게 요즘의 현실이다. 독일에 가는 덕분에 주구장창 공부만 실컷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생각하며 위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두려움은 완전히 극복하지 못 하기는 했으나 아마도 이런 두려움이 나에겐 더 준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동력이 되겠지? 막상 가서 부딪치기까진 불확실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기회가 나에게 온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고 있다는 것.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내 능력껏 해 보자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