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 엿판 하나 맞춰주."
Hanken School of Economics. 내가 2023년 상반기에 다닐 새로운 학교다. 낮은 학점, 치열한 경쟁률 때문에 교환학생 자체에서 불합격일 줄 알았는데, 어디로든 갈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어떻게 될지 몰라 5,6개 정도의 학교를 지원한 것이 나름 괜찮은 전략이었다. 어찌 됐든 교환학생을 가는게 목적이었으니깐. 그나저나 Hanken이 어디에 있는 학교였지? 기억이 안 나네.
Hanken School of Economics, Helsinki, Finland. 핀란드?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가 ‘휘바휘바’하고 외치던, 그 핀란드?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흰색이었다. 어쩌면 이 하얀색이 핀란드의 이미지가 아니라, 그냥 머릿속이 새하얘진 걸지도. 내 모교는 자주 접하지도, 자주 들어보지도 못한 핀란드로 가라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는 건 내게 익숙하다 못해 친근한 일이었다. 16년동안 지냈던 대전을 떠나 논산으로, 대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나라를 지키러 부산으로 떠난 경험이 있던 나였다. 우스갯소리로 내 사주에 역마가 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깐. 다만 지금까지의 경험과 앞으로의 경험 사이의 차이점은, 이제 곧 나는 외국 속 이방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 안에선 막막함, 두려움, 설렘, 호기심 그리고 그 이상의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부모님께도 교환학생 합격 소식을 말씀드렸다. 이 소식을 전화나 카톡으로 전달하는 건 아닌 것 같았는데, 마침 또 자취방에 오신다고 하시기에 직접 얼굴을 뵙고 말씀드렸다. 두 분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아빠는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고, 엄마는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어쩌면 엄마의 반응이 당연했다.
내가 유럽으로 떠날 시기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최악의 시기였다. 핀란드와 국경을 맞닿고 있는 러시아는 그들의 또 다른 이웃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었고(사실상 EU와의 전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천연가스를 무기로 삼아 유럽 전역을 압박 중이었다. 여기서 끝이면 다행이지만, 전 세계는 코로나 시기에 풀었던 지원금으로 인해 역대급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은 해외를 나가기에 ‘미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난 핀란드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어려운 상황이지만 내 이야기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챕터가 추가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난 핀란드 행을 결정했고, 필요한 서류 작업들을 진행했다. 핀란드 대사관에서 거주허가증을 발급받았고, 반년 동안 지낼 숙소와 핀란드로 나를 실어줄 비행기를 구했다.
출국까지 한달 남았다. 그동안 대전, 서울, 부산 등등 많은 곳을 옮겨다녔지만, 이번만큼은 좀 더 마음을 다잡는 중이다. 요즘의 난 핀란드의 눈과 나무를 가득 담을 수 있는 엿판을 짜고, 그 엿판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하고 있다. 돌아올 때는 어떤 내가 돼서 돌아올까. 설렘과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김동리, <역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