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들

로드트립 2019_민들레

by 마루금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 오토모빌을 타고 장거리를 이동하며 여행하는 방식을 로드트립이라고 한다. 보통 미국의 경우 한 주에서 다른 주로 이동하거나 국경을 넘어 캐나다나 멕시코로 가는 걸 로드트립이라고 일컫는다. 실상 내가 이제 막 살기 시작한 텍사스 주의 경우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혹은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부지런히 차를 모는데 13 시간 정도가 걸린다. 크기로 보자면 프랑스보다 109%나 큰 스테이트다. 물론 텍사스가 미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주다 보니 웬만한 국가들의 영토보다 넓다는 점이 별로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 방대한 땅덩어리의 미국을 차로 돌아보는 일은 때로는 차 안에 13시간 이상 쪼그려 앉아 속이 더부룩해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배짱을 필요로 한다.


나는 아직 운전면허증이 없다. 내 남편은 로드트립 내내 운전을 도맡아 한다. 이번에는 임시면허증을 들고 차량이 한적한 도로에서 직진으로만 달리는 운전을 다 합해 1시간 정도 했다. 아마 이번이 보조석에 앉아 풍경이나 느긋하게 구경하는 마지막 여행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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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의 끝자락에 떠난 로드트립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지난 세 번의 로드트립은 모두 미국을 여행차 방문한 중에 이뤄졌다. 뿌리박고 살 땅이 바뀐 후에 하는 첫 여행이다. 이방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미국 문화에 대한 식견을 넓혀 보려는 학습의 기회였다. 나는 그들과 무엇이 다르고, 무엇을 바꿔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이민을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자마자 입이 굳어 말은 나오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오는 증상을 가라앉혀 보려는 방책이었다.


10,000km. 텍사스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아마릴로(Amarillo)를 통과하여, 웨스트 코스트를 따라 밴쿠버까지 올라가 다시 동남쪽으로 내려오는 루트를 잡았다. 30일 간 텍사스를 포함해 12개 주를 통과했다. 캠핑장의 영하의 얼음장 같은 밤과 시속 백 킬로는 될 법한 계곡 바람을 마주하며 살갗이 터지고 말라 갈라지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한 날들은 일장춘몽이었나 보다. 벌써 아련하다. 집에 돌아오니 악명 높은 휴스턴의 고온, 다습한 여름 날씨가 반긴다. 일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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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로드트립을 하다 보면 함께 여행하는 이와 유대감이 자연스레 강해진다고 한다. 나는 남편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여러 번의 말다툼을 했고, 소리도 질렀다. 최장 반나절 동안 말을 걸지 않기도 했다. 대개 시시덕거리고 재잘대는 내 성격으로 반나절의 침묵은 꽤 큰 고통이다. 내 미래를 어떻게 꾸려야 할지 복잡한 마음이 여행 내내 삐죽 솟아났다. 운전하고, 캠핑 준비하고, 시시각각의 변화에 대처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방해했다. 기분 상했던 기억은 곧 증발한다. 정제된 즐거운 기억만이 마음 한편을 채울 것이다. 남편과 내 인생에 2019 봄의 로드트립, 사방에 민들레가 가득했던 일명 '민들레 로드트립'은 무엇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시간을 거스르며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꿈꾸었는지. 나는 무엇을 정화했는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시간에 어떤 이들 속에서 어떤 마음이 싹트고, 자랐는지 되짚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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