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봄-여름-여름-가을이 지나고서야

by 마루금

나는 텍사스에 사는 일이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내 삶에 새로운 연결고리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무서웠던 불안과 우울감은 더 이상 마음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브런치글을 한 번 쓰고 방치한 게 사 년 전이다. 그 한 번의 글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혹은 잠재해 있던 게으름의 힘이 불안보다는 커서 글을 쓰며 마음을 치유하겠다는 계획을 방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2019년 5월에서 6월까지의 로드트립 후 그 해 가을에 미국 한의사가 되기 위해 학교에 들어갔고, 거침없이 앞을 향해 가면서 팬데믹을 맞이했고, 학교를 졸업했고, 면허 시험을 통과해 텍사스 한의사가 되었다.

사 년의 시간 중 팔 할은 내 엉덩이가 일을 다 했다.


로드트립은 그 이후 세 번을 더 했다.

Palo Duro Canyon State Park, Caprock Canyons State Park

Mesa Verde National Park, Black Canyon of the Gunnison, Great Sand Dunes

Big Bend National Park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세계를 엿보고

뒷마당에 닭들을 키우면서 전에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종종 불안감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거나 심장을 터트릴 듯 짜릿하게 기습해 왔다.

그럴 때마다 '1시간 재생 진짜 집중력 30% 향상 (https://www.youtube.com/watch?v=Eom3GdYVSgk)'이 음악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간 나는 이 음악을 몇 시간 동안 재생을 했을까?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언제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갑갑함을 풀어내고, 시원하고 평온하고 넓은 세계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내게 무척이나 잘 맞는 음악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클리닉 인턴을 하는 동안 몇몇 이 음악을 틀어두었는데 신기하게도 진료실의 대기를 통해 이 음악과 잘 맞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눈치챌 수 있었다. 굳이 그들이 이 음악에 대해 뭐라고 평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생활하면서 나는 텍사스의 '봄-여름-여름-가을-일주일의 겨울'의 순환을 네 번 보내며 이 무더위, 흡사 편백나무 건식사우나 혹은 한증막 내부의 공기만큼 뜨거워 콧구멍으로 들이치자마자 콧속세포들에게 충격을 가하는 그러한 무더위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아니,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텍사스와 멕시코의 국경이 고향인 친구조차 한여름의 한낮에 '이열치열이다!'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으니. 이열치열 전략은 어느 정도 적중했는지 올여름 최고 섭씨 43도까지 치솟는 미친 기온, 석 달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조한 더위에도 38도로 내려간 저녁에 학교 운동장 트랙을 걷고 뛰며 시원하다를 외칠 수 있었다.


적응 전략과 익숙해짐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무언가 아쉽고 허전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그게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산' '언덕' '고갯길'. 그렇다, '마루금'

그 허전한 마음이 들 때 뭔가 아련하게 그리움이 떠돌 때 나는 지리산 사진을 보고 있었다. 아니면 우리 동네 언덕길 사진들을. 평지가 내 삶에 무한한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나는 언덕길에 기댄 내 발바닥의 30도 기울기와 직각이 된 오금이 그립다. 오스틴은 그나마 Hill Country. 짧고 자그마한 재간둥이 언덕을 보며 저게 높디높은 고갯길이라 상상한다. 내 상상 역량은 소진되고 있고, 나는 내내 텍사스 탈출을 꿈꾼다. 올해 운수는 지금 그대로 혹은 남쪽으로인데, 나는 너무나 북쪽으로 가고 싶다. 갈 수 있을까?


인간은 꿈꾸는 동물이니 북쪽으로 가는 꿈을 안은 채 로드트립 이야기와 나의 새로운 한의학 세계 이야기도 풀어나가려고 한다. 구. 준.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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