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소리

환자들의 코 고는 소리, 기지개 켜는 나른한 소리

by 마루금

나는 난임을 겪고 있거나, 임신을 준비 중이거나, 임신 중인 여성환자들에게 침구진료를 하고 있다. 우연히 추천을 받아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올봄에는 호르몬, 인공수정, 냉동배아이식 등 인터넷 강의를 듣고 책으로 공부하다가 또 진료를 앞둔 환자 사례에 맞춰 머릿속에 뒤죽박죽인 정보를 끄집어내느라 끙끙대면서도 겉으로는 초짜 한의사가 아닌 척, 다 아는 척하느라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여전히 모르는 게 구 할이지만 주 업무가 냉동배아이식 전후로 제공하는 침구치료이다 보니 조금은 익숙해지는 부분이 생기고, 모르는 부분은 공부할 여유도 조금은 생겼다. 아니, 사실 시간적 여유가 많다, 아직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도 난임을 전문으로 하는 클리닉이 많이 있다. 여성 환자에게 기저질환이 있거나, 남성배우자의 생식력이 약해서 클리닉을 찾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동성커플(Same Sex Partner)이나 자발적 미혼모(Single Mom By Choice)들의 방문도 많다. 내가 방문진료를 하는 난임 클리닉은 뉴욕에 본사를 두고 미국 전역에 32개의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통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지향하는데 시카고 지점에서는 냉동배아이식 전후에 제공하는 침구치료 서비스의 인기가 아주 많다고 한다. 오스틴 지점은 문을 연지 몇 해 지나지 않았지만 이곳의 차분하고 친절한 기운이 가득한 생식 내분비학 및 불임 전문의(Reproductive Endocrinology and Infertility, REI)는 침치료의 열혈 팬으로 올해 초부터 환자들에게 침구치료를 제안하고 있다. 그래도 이곳의 침구치료 수요는 아직 저조하다.




드문 드문 예약이 잡히는데 그래도 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다. 클리닉이 집에서 멀지 않아 버스를 타고 시내에 가는 날이기도 하다. 오스틴 시내의 날로 높아지는 마천루들과 역사적인 벽돌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덕수궁 돌담길과 광화문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또 새롭게 만날 환자도 반갑고, 잔뜩 긴장해서 온 이들을 침으로 화끈하게! 긴장을 풀어 줄 기대감이 부푼다.




가만히 보니 나는 인턴십을 할 때부터 "잠을 통 못 자요.", "잡생각이 많이 들어서 편안히 쉬기가 어려워요.", "근육이 너무 당겨서 아파요." 등등 주호소증상을 막론하고 유침하는 동안 코를 골거나 숨을 푸푸~ 내쉬며 곤하게 자는 환자를 보면 속이 다 시원해졌다.

냉동배아이식을 하는 환자들은 자연임신부터 인공임신까지 다양한 종류의 임신노력을 지루하게 해 온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냉동배아이식을 선택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나는 분들은 이식을 30분 앞두고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식 과정이 낯설어 불안하고 긴장되지, 이에 더해 방광은 빵빵하게 채워져 불편하지 침치료로 낯설지. 이래서 얼굴은 웃고 있지만 몸은 긴장한 경우가 많다.

먼저 첫 웃음을 유발할 때까지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던지며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혈자리를 찾으면서 부분적으로 손발, 팔다리의 근육을 풀어주고 자침 후 약한 득기를 취한 후, 백색소음으로 새소리를 틀고, 발아래 히터를 켜고, 전등을 끄고, 잘 쉬라고 하고 진료실을 나온다. 이렇게 미션완료까지 주어진 시간은 5분에서 7분. 이제 나는 라운지 소파에 앉아 환자가 20분 안에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하기를 기대하며 그사이 파악한 환자의 상태를 바탕으로 이식 후에는 어떤 침자리를 추가할까 생각한다. 다시 진료실의 불을 켠다. 발침을 한다. 환자가 '으아~'하고 기지개를 켜면 성공! 이제 물을 더 마시라고 친절한 물고문을 한다.

환자는 이식 방으로 이동하고 나는 기다린다. 방광을 비우고 개운하게 다시 나타나는 환자들은 대개 만면에 뿌듯함을 안고 진료실에 들어선다. 때로는 배아 사진을 보여주는데, 사실 그 배아가 그 배아처럼 보여서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오~! 너무 귀엽네요!" 입바른 말을 한다. 쿨한 환자들은 "그래요? 내 눈에는 뭔지 잘 모르겠는데.."라고 대꾸하고, 감성이 풍부한 환자들은 "그렇죠! 너무 귀여워요."라고 대답해 "네~ 하하" 나도 모르게 더 큰소리로 웃음소리를 내게 만든다.

이식 후에는 모든 진료과정이 부드럽다. 침구치료 경험자가 된 환자들은 알아서 진료테이블에 누워 자세를 취하고 이전보다 편안하게 침치료를 받는다. 깜빡 잠이 들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너무 개운해서 집에 가기 싫다고 장난으로 떼를 부리기도 한다. 환자의 나이, 몸집, 인종에 상관없이 이 모든 행동들이 귀엽게 느껴진다. 아니면 내가 아침마다 스스로에게 걸어 둔 마법문구가 효력을 발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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