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목표: 100번 인터뷰하기

우선은 허튼소리, 빅밴드국립공원 방문기부터 이야기한다

by 마루금

2023년은 빅밴드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일로 상큼하게 시작했다.

겨울의 빅밴드는 황홀했다. 장대함은 고요함과 빛과 바람으로 우아하게 빛났다.

저 강 너머 뒤의 산맥 쪽은 멕시코

세상 어디든 바위를 보면 낙서하지 않고는 지나가지 못하는 못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집요하게 제 이름에 먹칠하는 에너지를 바위에 쏟고 가면 그걸 또 집요하게 지워내는 사람들이 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 그늘 아래에서 코를 훌쩍이며 열심히 팔을 상하좌우로 움직이고 있던 A 씨를 트레킹 중에 만난 것도 그런 우둔한 이들의 의미 없는 짓 때문이었다. 다행히 낙서의 깊이가 얕아 A 씨는 상당 부분을 지워낼 수 있었다. 그녀의 일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우리는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고 생각했는데 풍경을 감상하는 1분 사이에 분명 바위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A 씨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 은퇴 후 17년째 국립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는 빅밴드에 올인 중이시다.


멕시코와 국경에 자리한 빅밴드는 여름에는 들끓는 날씨 때문에 기피하는 아니 기피해야 할 국립공원이다. 올여름에도 탈수와 열사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리도 갔던 트레일인데, 1월에도 꽤나 덥게 느껴졌던 곳이었다. 그곳을 한여름에 갔다니, 분명 트레일 초입에 경고문이 쓰여있었을 텐데. 엄청난 광기가 아니라면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트레일이건만... 그래서 겨울은 빅밴드를 방문하기에 최상의 계절이다. 이미 다른 국립공원들은 눈과 얼음에 갇혀 도로를 폐쇄하는 곳이 많기 때문에 겨울에도 몸이 근질거리는 하이커들은 빅밴드로 향한다.


빅밴드국립공원 자원봉사자 그룹이 있는데 이들은 일정기간 동안 담당할 구역을 맡는다. A 씨가 남편과 함께 맡은 구역은 backcountry hiker들 공간 관리. 즉 정해진 캠핑구역이 아닌 허가증을 받고 하이킹을 하다가 좀 더 야생의 공간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거나 비박(bivouac)을 하는 이들이 머무는 공간을 매일 돌아보며 관리하는 일이다. 보통 일 년에 삼 개월 정도를 캠핑카를 몰고 와서 빅밴드에서 지낸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이 머무는 RV 파크가 따로 있는데 거기에 머물면서 남편과 맡은 구역을 나누어 매일 이 산을 오르내린다고 한다. 그러니 축지법을 쓰듯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셨다는 순식간에 하실 수 있는가 보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완전 날다람쥐 같은 몸짓으로 날렵하게 Emory Peak Trail을 섭렵하고 계셨다. 그런데 자원봉사 기간이나 시간에 놀라워하니 이 일도 경쟁자가 많아 중간에 쉬게 되면 바로 대기자 명단에 있는 자원봉사들에게 이 멋진 일을 빼앗기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Emory Peak Trail 초반에 이 아내분을 만난 후, 풀이며 꽃이며 풍경 감상하며 산을 올랐다. 산 꼭대기, 진짜 정상은 뭐랄까. 웅장한 산맥에 비해 거칠고 옹졸했다고 해야 할까? 막판에 암벽을 타야 하고 그 밑으로는 아찔한 낭떠러지고, 암벽을 하나 건너서 또 암벽을 타야 조그만 공간이 나타난다. 그 암벽을 올랐던 생각이 떠오르며 지금도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맺힌다. 나는 하나의 암벽은 타고 올랐지만 그 옆의 암벽을 건널 마음이 없었다, 애초부터. 그래서 시야가 반이 막힌 성인 둘이 서면 꽉 차는 공간에 떨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나는 이 순간과 이 경치를 즐긴다' 여유를 부리는 척 엉거주춤 서서 집에서 가져와 그곳까지 들고 올라간 우리 집 닭들의 알로 만든 맥반석 계란을 까먹었다. 가끔 그곳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느라 몸을 더 구겨 서 있다가 심장을 재정비한 후 그 암벽을 내려왔다.

밑을 내려다보지 않는다면 올라가 볼만한 암벽.
Emory Peak 바로 아래

하산길에는 길을 잘못 들었다. 어느 시점에 이 길은 아까 올라온 길과 다른 것 같은데? 감지하기 시작한 후로 엉뚱한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들이 서너 개쯤 모아졌을 때 지난 가던 이들에게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겁니까? 묻고 그 지점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우리는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완전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방향을 틀어 갈래길로 다시 돌아오느라 족히 40분은 허비했다. 해 지기 전에는 다 내려가야 하는데, 오랜만에 산을 타는 다리는 생각보다 일찍 뻣뻣해졌다. 무릎이 꺾이지 않는 듯한 감각과 발가락과 발바닥의 물집을 피해 발을 내딛다 보니 하산길이 길어졌다. 다행히 일몰을 보러 가는 무리들이 우리를 지나쳐 반대길로 걷는 걸 보니 아직 햇빛 아래에서 저녁밥을 지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마지막 길을 달려 내려왔다. 그러고 보니 다리가 다시 달리기를 할 줄 아는 게 아무래도 다리가 꾀병을 부린 것 같다. 그렇게 내려오는 길에 A 씨의 남편을 만났다. 누군가 우리한테 인사를 하길래 돌아보니 자원봉사 조끼를 입고 계신 분이었다. "혹시 A 씨의 남편?" 물으니 껄껄 웃으신다. 그렇게 입산하는 길에 아내를 하산하는 길에 남편을 만났다.

다 내려온 트레일.

뒤를 돌아보자 다시 올라가고 싶어 진다.

희한한 마음.

남편의 머리카락 뒤로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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