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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디 Jun 13. 2023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하여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답

하루는 당시 남자친구에게 '넌 어떤 사람이 좋아?', '넌 어떤 사람이 싫어?' 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을 하면서도 어느 쪽 질문에 더 많은 대답을 할지 내심 궁금했다. 어떤 사람이 좋냐는 질문에 그는 모나지 않은 누군가의 두 세가지 특징을 두루뭉술하게 얘기했지만 어떤 사람이 싫으냐는 질문에는 짧은 시간 대충 10개가 넘는 특징을 이야기했다. 나중에는 잘 안 씻어서 냄새나는 사람까지 이야기하더라.

     

이야기를 하며 그의 미간이 간혹 찌푸려지는 걸 보며 그가 대답을 하며 과거 싫었던 사람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나에게 똑같이 물어봤을 때, 나도 비슷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왔고 싫어하는 사람의 특징은 내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요즘은 그렇다.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싫은 점이 나를 참 힘들게 하면 그 사람하고는 오래 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장점 못지 않게 단점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중요하게 보게 되었다.


사진: Unsplash의Drew Beamer


근데 이게 과연 인간관계에서만 이럴까? 얼마 전 문득 돌아본 지난 10년의 발자취는 좋아하는 걸 좇았다가 거기서 싫어하는 것들을 만나고 도망쳐온 여정의 반복처럼 느껴졌다. 10년 전의 나에게 지금의 이 사실을 알려준다면 과거의 나는 분명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왜 미래의 나는 도망칠까. 힘들어도 끝까지 견뎠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텐데...' 하면서. 근데 그 모든 시간을 알고 있는 나는 싫어하는 걸 지워온 삶도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고 그게 때로는 행복으로 가는 빠른 길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 일할 때, 난 강사 일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 앞에서 발표하는 것 좋아하고, 아이들도 좋아해서 당연히 좋아하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침내 할 수 있다는 그 사실도 기뻤다. 일을 해보니 아이들 만나는 것도 좋았고, 일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걸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리고 딱 그만큼 힘들고 싫은 것도 많았다.


그 이후 뉴질랜드에서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는 회사에사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다. 식당에서 일했던 과거 뉴질랜드에서의 경력과 달리, 그저 서서 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끌려서 일을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강사할 때랑 비교하면 싫은게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그 일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사진: Unsplash의Priscilla Du Preez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불행한 사람이 되어보기도 했었고,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는데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보기도 했었다. 그러니 불행과 행복, 이 두 차이를 만든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걸 내가 얼만큼 감당할 수 있는지 였다. 좋아하지만 싫은 부분이 많은 일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은 부분이 적은 일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는 그 둘 다 당사자가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창 영주권에 발이 묶여 있을 때는 좋아하는 일이면 뭐든 좋을 것 같았던, 그래서 이매진 드래곤스 콘서트에서도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걸 해야한다고 생각하던 나는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좋아하는 것 못지 않게 물어보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좋아하는 건 어떤 이미지로 찾아오고 싫어하는 건 내 기억으로부터 끄집어 내는 것이니까. 내가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또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흔히들 '무엇을 좋아하세요?' 라고 서로에게 묻기는 해도 무엇을 싫어하냐고는 잘 묻지 않는다. 왜 우리는 싫어하는 게 뭐냐는 질문은 좋아하는 게 뭐냐는 질문만큼 묻지 않을까. 결국은 싫어하는 것, 그게 우리가 걷는 여정에서 큰 돌부리가 되기도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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