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시소를 본적 있나요?
고장난 시소를 본 적이 있다. 고장나지 않은 정상적인 시소는 그 자체로 무게감이 있어서 한쪽이 무거워지면 천천히 내려가고 반대편도 천천히 올라가는데 고장난 시소는 한쪽이 조금만 무거워져도 확 내려가고 그 반대편에 다시 조금만 무게가 실려도 또 금방 반대쪽으로 기울어진다. 나는 일희일비할 때의 내가 꼭 그 고장난 시소 같다고 생각한다.
날 좋고 컨디션 좋을 때는 세상 행복한 사람이다가도 그와 같은 날에 별 것 아닌 말 한마디에 온갖 걱정을 뒤집어쓰고 잠들기도 하고, 어제 누군가와 박터지게 싸웠더라도 오늘 그 사람과 같이 헤헤 거리는게 나는 가능하다. 얼마 전까지 저 사람 너무 싫다고 욕을 바리바리 하다가도 또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냐고 혼자 그랬다가 또 미운 구석이 보이면 역시 싫은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거라고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러기도 한다. 사람이 좋을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그게 뭐가 나쁜거냐고. 나도 그 생각에는 동의를 한다. 일희일비라는 것도 그 순간 순간 마다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일수도 있지 않나. 그게 뭐가 나쁜가. 근데 어느 날 친구 꾸꾸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로 나는 내 고장난 시소를 조금 고치게 됐다.
그 날도 주변 사람 때문에 너무 짜증이 나서 꾸꾸를 붙잡고 한참을 보이스톡을 했다. 나를 짜증나게 했던 그 상황을 세세히 묘사를 하며 내가 한창 열불을 낼 때 꾸꾸는 '헐, 대박, 미쳤네' 와 같은 아주 적절한 리액션을 하며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고 보이스톡을 끝내기 전에 그러더라. '너 근데 이러다가 또 그 사람이 잘해주면 그 사람 좋다고 할꺼잖아.'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했던 꾸꾸는 나의 이런 패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꾸꾸가 그랬다. '사람이니까 일희일비 할 수 있고, 당연히 일희일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선을 네가 좀 정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 거기에 나는 어떤 선을 말하는거냐고 되물었다. 꾸꾸는 '오늘의 너의 그 변덕스러운 감정 때문에 어쩌면 인생에서 꽤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네가 쉽게 결정해버리진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했다.
가령 비오는 월요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출근을 했는데 요즘 가뜩이나 날서 있는 듯한 상사로부터 내 보고서에 대한 나쁜 피드백을 들었고, 유독 그 상사는 나를 만만하게 보는건지 내가 입사하고부터 줄곧 나에게만 함부로 하는 것 같고, 단톡방의 친구들에게 월요일 아침부터 짜증난다는 했는데, 한 친구가 역시 퇴사가 답이라고 답장을 했고, 묘하게 그 날은 그 말이 신의 계시처럼 느껴질 때. 근데 사실 그 상사는 전날 와이프와 아이 픽업 문제로 실랑이를 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잠도 잘 자지 못한 채 출근을 했고 부하 직원의 보고서에 대해 건조하게 발전 사항을 알려줬을 뿐일 수도 있는 거다.
꾸꾸가 그랬다. '만약에 네가 그 부하직원이라고 한다면 나는 누군가의 그 날의 감정 때문에 네 감정이 요동쳐서 네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퇴사 결정을 갑자기 내리진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내 변덕스러운 감정 때문에 그런식으로 갑자기 어떤 결정을 내린 적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감정이 요동칠 때면 내 머릿속으로 지금 당장 어떤 결정의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 자리에 나를 앉혀 놓는 상상을 한 적은 많았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내가 이해한 꾸꾸의 다음 말은 이랬다.
일희일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뜻이고, 설사 스스로는 본인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라 생각할지라도 실상은 외부적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런 외부적인 자극 때문에 어떠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면 그 결정은 스스로에 의한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뜻하지 않게 인생의 방향키를 놓칠 수도 있는 결정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 때 이후로는 내 마음 속의 시소가 홱홱 옮겨지는 걸 느낄 때 난 내게 물어보려 한다. 지금 내가 이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이 굳어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린건지, 그리고 어떤 결정에 대해서도 얼마만큼 오랫동안 생각을 하고 내린 것인지 그리고 그 결정을 하게 했던 결정적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일희일비에도 그 나름이 장단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무게를 가진 시소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