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맨디 Jun 21. 2023

나의 인스타그램용 순간들

내 인생은 그래야 한다는 믿음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어떤 사진을 찍고 ‘아, 이건 인스타에 올려야 되는 사진이다!’ 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드는 순간. 또는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서 사진을 찍게 되는 순간. 난 그걸 인스타그램용 순간들이라고 부른다.


뉴질랜드 회사에서 퇴사할 때 동료들이 준비해준 선물과 정성스럽게 써준 카드를 받자마자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건 인스타에 올려야해!!' 누군가에게 그 순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난 보통 내가 기억해 두려고 인스타에 올린다.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는 팀원이었다는 그 증거를.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인스타용 순간들이란 결국 내가 용인할 수 있는 나의 순간들이겠구나!'


여행지에서 보내는 유유자적한 시간, 주말에 분위기 좋은 곳에서 브런치, 카페에서 읽는 책, 남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목걸이와 발렌타인 초콜릿,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 환히 웃고 있는 나. 이 모든 사진들이 올라와 있는 누군가의 인스타는 인생을 즐기고, 나에게 베푸는데 후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내 자신이 용인할 수 있는 나의 순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어쩌면 그러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응당 내 인생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인스타에 포착되어 있다.


사진: Unsplash의Gabrielle Henderson




얼마 전 필라테스 등록을 하며 다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몇 달의 치료를 거쳐 마침내 운동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게 기쁠 따름이었다. 첫 수업에 강사님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숨을 쉬고 내뱉다,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왼쪽에 비해 확실히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다 혼자 그랬다. '이 또한 내가 안고 가야하는 내 몸이구나!'

 

내 일상이라는 게 늘 내 맘에 드는 인스타용 순간들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순간들을 나는 어디에 보관하고 있었던가? 반짝이고 싶었지만 생기를 잃었던 날들, 이런 일이 내 인생에 왜 일어나나 누군가에게 따져 묻고 싶던 그 날들. 내가 용인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그 날들이 어쩌면 내 인생을 변화시켜온 날들이고, 반짝이는 날들을 뒷받쳐오던 날들인데, 그 이야기들은 어디에 쌓여가고 있었나.


사진: Unsplash의Artem Anokhin



   

어느 날 뉴질랜드에서 친한 언니와 통화를 하다 언니가 내게 그런 얘기를 했다. 언제부턴가 오랜만에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그 대화가 ‘인스타그램’ 같아졌다고. 서로의 인생에서 좋아보일 법한 것들만 이야기하게 된 것 같다고. 그래서 이제는 그런 대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언니가 기대했던 대화란 어디서도, 그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었던 서로의 내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오고갈 때 진짜 속깊은 대화를 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어땠을까, 그런 내밀한 대화를 나는 늘 나와 하고 있었을까? 어쩐지 인스타그램용 순간에만 골몰했던 것 같다는 반성이 드는건 왜일까.


작가의 이전글 모든게 자존감 탓은 아니라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