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창가 3번 테이블 껌딱지이고 싶다
"안녕하세요, 저 밑에 구인 광고 보고 올라왔어요."
군 입대 전까지 생활비 마련할 곳을 찾고 있던 스무 살의 어느 날, 혜화로터리 근처에서 우연히 학림을 만났다.
학림다방의 2층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일을 배우던 첫 주에는 2층 테이블에서 카페라테 주문이 들어오면 살짝 긴장이 됐다. 넘칠 듯 찰랑거리는 카페라테를 쟁반에 담아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커피가 쏟아져 컵받침에 고이기 일쑤였다. '죄송합니다 손님!'을 연발하는 스무 살의 더벅머리 청년을 너그러운 웃음으로 용서해 주시던 중년의 손님들이 삼삼오오 찾아오던 그런 곳이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2층 맨 앞자리에 가서 앉곤 했다.
손님들은 대학로의 플라타너스 나무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을 좋아했지만 나는 2층 테이블에 앉아 시상을 떠올리고 잠시나마 글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시를 쓰다가 손님들이 나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내려가 손님을 맞았다.
비 오는 날이면 창 밖 풍경이 제법 근사했다.
비에 젖은 플라타너스 잎과 어스름한 차 불빛, 그리고 매장 구석구석이 몽돌 같은 김광석의 목소리로 가득 차는,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학림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빼곡히 꽂힌 LP들과 CD들 중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광석 노래도 자주 들었지만 클래식기타 연주곡들을 많이 들었다. 사장님이 좋아하시던 정태춘과 박은옥의 듀엣 앨범도 잊지 못한다. 그중 <시인의 마을>이라는 곡을 제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에서의 첫 1년은 동아리방에서 살았다.
3월 개강도 전에 학생회관 동아리방에 찾아가 입회원서를 작성했다. 동방에서 클래식기타를 치다가 수업 시간이 되면 강의실로 뛰어가 잠깐 수업을 듣고 다시 돌아와 기타를 쳤다. 대학 1년의 마지막에는 강의실이 아닌 학림으로 다녀왔다. 그만큼 기타가 좋았다.
"수고한다. 밥 사 먹어."
본인이 손님으로 있어서 마감시간이 지나서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내게 미안했는지 김민기 씨가 돈 만원을 쥐어 주셨다. 그 후로 서너 번 대학로의 대부 김민기 씨가 학림에 들르면 꼬깃한 만 원을 용돈으로 주시곤 했다. 그 돈으로 당시 내 시급보다 더 비쌌던 버거킹 와퍼를 오랜만에 사 먹으며 행복해했다. 그 해에 아마도 <지하철 1호선> 독일 원작 팀이 내한 공연하는 일 때문에 바빴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은 독일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술을 잔뜩 마시고 간 적이 있었다.
창가 쪽 세 번째 테이블은 잊을 수가 없다.
마감 시간이면 한쪽 테이블을 뒤집어서 다른 쪽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바닥 청소를 했는데, 어느 날인가 테이블을 뒤집어 올리다가 누군가 오래전 붙여 놓은 듯한 껌딱지를 발견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은 마감시간마다 그 껌딱지를 보며 미소 짓곤 했다. '가수 김광석이 공연을 마치고 들렀다가 붙여 놓았을까? 에이, 그건 아니겠지... 부모님과 마로니에 공원에 들렀던 중학생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소개팅 장소에 먼저 와 기다리던 사람이 급하게 껌을 뱉어야 했던 걸까?' 매번 다른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청소가 마무리되곤 했다. 이제 와서야 하는 얘기이지만 나는 학림스럽다며 그 껌딱지를 끝까지 떼지 않았다.
그 껌을 붙인 사람은 알고 있을까?
본인이 붙여 놓은 그 껌딱지가 어느 알바생의 20년도 더 된 기억을 붙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껌딱지 같은 질긴 기억이고 싶다.
껌 붙여 놓으신 분에게,
20년 전 더벅머리 대학생의 하루를 미소로 마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가급적 테이블 밑에 껌을 붙이진 말아 주세요. 알바생은 고단하답니다.
나의 스무 살 청춘에게 낭만과 여유의 공간이 되어주었던 학림,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동하던 고소한 커피 냄새가 오늘따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