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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Jan 03. 2023

<최고의 후회를 찾아서> 프로젝트 수업 ep.1

Prologue

평범한 당신의 후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 돌아와 보낸 첫 해 겨울,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노인회관에서 모이지 못한 할머니들께서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앉아 햇빛을 쬐며 담소 나누시던 모습을 종종 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한창 창업 아이디어 떠올리기 놀이에 빠져 있던 내 머릿속에 노인들의 이야기를 짧은 영상으로 남기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니까. 타겟을 잘 잡으면 꽤 괜찮은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 노인들의 복지에도 도움이 되는 이 얼마나 멋진 사업인가? 이거 설마 대박이 나는 거 아닌가 하는 단꿈에 젖어 그렇게 며칠을 행복하게 지냈다. 이런 정제되지 않은 나의 꿈 이야기들을 지난 14년 간 묵묵히 들어준 나의 고마운 아내는 이번에도 역시나 짧고 명료한 피드백을 준다.

"별론데?"


아내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뭔가 조금 아쉬웠다. 지난 10년 간의 미국생활을 뒤로하고 돌아온 한국은 내게 '기회의 땅'이어야 했다. 고생 끝에 정착한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선택이 정당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흔 즈음의 이 시기가 훗날 인생의 전환점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무렵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변화를 향하고 있었다. 당장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지만, 씨앗을 심는 마음으로 관련 도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명 인사들의 후회 에세이를 모은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사람들은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삶에서 교훈을 얻으려 한다. 아쉽게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런 화려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각자의 삶에 충실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저마다의 인생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야기 나누시던 그 할머니들처럼 말이다.


최고의 후회를 찾아서


시간이 흘러 이야기 사업 아이디어의 감흥은 가라앉았고 이내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기회가 찾아왔다. 한 달간 자율적으로 프로젝트 주제를 정해 도전해보는 심리학 과목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후회와 관련한 사회 참여 프로그램을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간의 바람도 있었고, 최근의 사업 아이디어와도 연결이 되기에 이때다 싶어 <후회>를 키워드로 한 수업을 기획하기로 했다. 20여 년 전 뿌려둔 씨앗이 이제야 싹을 틔우려나보다.


수업의 제목을 <최고의 후회를 찾아서>로 정하고 사전 설명회를 열어 학생들에게 취지를 설명했다. 설명회를 마치고 보니 '최고'라는 거창한 수식어에는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최고의 후회란, 자신이 생각할 때 현재와 미래의 본인에게 가치(value)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통찰을 주는 후회로 정의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추상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대강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겠지. 1주 차에는 후회 그리고 서사정체성에 관한 강의 위주로 진행하고, 2주 차에는 학생들 본인의 후회 경험에 대해 에세이를 작성하도록 한다. 3주 차에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후회 이야기를 듣고 그중 자신에게 가장 울림이 컸던 최고의 후회에 대해 글을 쓰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 인터뷰 대상과 주제를 정할 때 학생 자신의 후회 이야기 주제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도록 할 생각이다. 마지막 4주 차에는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와 같은 후회 에세이 책 출간 작업을 할 계획이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20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고민과 사랑, 꿈,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책이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학생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수업의 컨셉을 얘기했더니 일단 재미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다. 이게 될까 싶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전이 가져다주는 삶의 활력에 감사해하며 가을 학기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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