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정의할수 없는 쌀국수
연남동에 한 베트남 전문 음식점을 갔었는데, 서빙을 받는 종업원이 프랑스인이었다. 베트남 음식점에 프랑스인이라는게 좀 아이러니해서, “베트남 음식점에서 일하시네요?”라는 물음에,
“쌀국수 원래 프랑스요리에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식당이 바빠서, 자세히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자세히 좀 찾아보았다.
쌀국수는 베트남어로 포(PHO) 라고 불리며 따라서, 한국에서는 포베이, 포메인, 리틀 파파 포 등 포가 들어간 상호를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쌀국수가 프랑스에서 왔다는 설은 프랑스의 야채수프인 뽀오페(pot au feu)가 베트남의 환경에 맞게 변형이 되었다는 것인데, 쌀국수의 국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양파와 생각이 뽀오페를 만들 때 사용되는 것과 같고,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는 이러한 조리법이 없다고 한다. 또한, 양지등의 고기토핑을 하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소를 이용한 농경사회에서는 소고기 요리가 많이 발달하지 못하는데, 그에 비해 쌀국수는 소고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쌀국수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게 정설 아닌 정설이 되었다.
베트남 쌀국수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19세기 방직공업이 발달했던 베트남에서, 간단하게 먹기 시작한 요리가 점점 발달하여 쌀국수가 된것이다. (음식 역사가 짧기 때문에, 외부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요리라는 설이 더욱 강력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의 라면과 정서를 같이한다.
베트남에서는 매일 아침 쌀국수를 먹는다. 베트남의 아침은 쌀국수가 연다는 말이 있을정도이다.
베트남이 프랑스에서 독립을 한 후, 간편하면서 저렴하게 먹을수 있는 음식은 아마 쌀국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점점 주식으로 자리를 잡혀진 쌀국수는 종전과 식민지라는 오마주를 안고 있는 마냥 기쁘고, 맛있기만 한 음식은 아닐것이다. 어쩌면 한이 서려있을수 있는 쌀국수이기 때문에, 쌀국수는 베트남의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88올림픽 이후, 90년대 초반 외국 문화가 더욱 개방이 되면서, 쌀국수가 한국에 들어왔으나, 특유의 향신료는 한국정서에 맞지 않았고 따라서,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웰빙” 열풍이 불면서 압구정동과 강남일대를 중심으로 건강한 고급음식이라는 베트남요리가 전파를 탔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웰빙은 호주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베트남 전쟁이후 많은 베트남 인들이 호주로 건너가서 정착을 한 후, 월남식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그것이 호주에 웰빙으로 자리잡고, 이것이 또 우라나라에 전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종종 호주식 월남쌈과 같은 식당을 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웰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우리나라에서 먹는 쌀국수는 굉장히 담백하고, 깔끔하며, 기름기가 적다. 또한, 많은 월남식 중에서 가장 빨리 보편화가 된 것이 월남쌈이며, 라이스 페이퍼에 많은 야채를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 만큼 핫 하지는 않지만, 정말 많은 브랜드의 베트남 음식점들이 생기고 있고, 정통 베트남 요리를 먹기 위해서 베트남을 찾는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으로 여행을 가고 있다. 쌀국수는 컵라면으로도 출시 되었고, 군대에서도 보급이 나온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도, 월남식을 쉽게 접할수 있기 때문에, 아마 쌀국수 포(PHO)는 김치보다 세계에 더 깊숙히 침투해 있을수도 있다.
이제는 세계인의 음식이 된 쌀국수. 박항서감독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졌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도 베트남은 가난한 나라, 국제결혼의 나라 등으로 인식이 좋지 않다. 한국에서 만날수 있는 베트남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같이 식사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