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물 소개하기 (1)
산티아고로 떠나는 한국인의 배낭의 짐은 대부분 비슷비슷할 것이다. 인터넷에서 물집에 좋다고 소문난 양말과 스포츠 의류 몇 가지, 침낭, 우비 그리고 한국음식들.
한국음식을 챙겨간다는 건 어떤 면에서 1g까지도 따져 챙겨가는 까미노 용품에서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까미노에 대한 관점은 누구나 다르니까.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강력히 한국음식을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한국을 떠나 생장까지 이동하고 또 그때부터 시작되는 800km의 길을 걷는 그 대장정 속에서 힘들고 고될 때 배낭에 있는 고향의 음식 하나가 그 누구의 응원보다도 강력한 힘이 된다.
누구에게는 그게 소용량 볶음 고추장이 될 수도 있고 매운 라면이 될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종류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내게 익숙한 맛이라는 것. 그것은 머나먼 타지에서 홀로 남은 여행자에게 아주 강력한 위안이 된다.
순례길을 걷는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 8시간을 산 넘고 강을 넘어 계속 걸으면 된다. 걷는 길 여정에서 쉴 마을에 도착하면 하루를 보낼 숙소를 구하면 된다. 그리고 숙소이 들어가면 길 위에서 오며가며 마주친 순례객들이 하나둘 모여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한다. 그렇게 숙소가 순례자들로 모여 시끌벅적해지면 이제는 나와의 전쟁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샤워 전쟁이 된다.
한바탕 씻는 타이밍을 눈치를 보며 씻고, 빨래를 널어 까미노의 일과를 마치고 잠시 침대에 누워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말은 곧 밥을 먹을 수 없다는 말이다. 쓰여진 그대로 내가 피곤해서든 레스토랑이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든 밥을 못 먹는 상황이 된다.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그 상황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한 끼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때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절실해 진다. 이순간 가방에 라면이 있다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만약 이때 라면을 끓인다면, 숙소에 있는 한국인들을 모두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18년에 첫 산티아고를 갈 때는 내 경험은 없이 오직 인터넷에 의지한 채 이것저것 준비를 했었다. 정말 다양한 정보를 얻었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갔는데, 그 준비물 중 한 가지가 바로 인터넷에서 파는 '대용량 라면수프'였다. 한국에서 산 라면수프 1봉을 챙긴 채로 산티아고를 떠났던 우리는 생장에서 피레네를 넘으며 먹을 간단한 간식과 순례길 첫 마을인 론센스바예스에서 야매 라면을 끓일 요량으로 파스타 한 봉을 샀다.
다음날 떠난 산티아고의 시작은 태어나 처음으로 해보는 가장 기나긴 산행이었다. 조금 걷고 길게 쉬고 짧은 한 걸음 걷고 한 숨을 길게 내쉬고 그렇게 피레네 산을 올랐다. 이 길의 끝이 어딘지도 알지 못한 채 10시간을 걸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사람이 몰려 미지근 한 물은커녕 찬물로 후다닥 씻고 동생과 나는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10시간을 걸으며 먹은 거라곤 오리손에서 먹은 오렌지주스와 하몽 샌드위치, 그리고 사탕 몇 개가 전부여서 온몸에서 계속 지금 당장 탄수화물을 넣어주지 않으면 이곳에서 쓰러지겠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부터 소중하게 이고 지고 온 대용량 라면수프를 넣어 넣은 채 급하게 점심 겸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던 론센스바예스의 주방에서 오직 마카로니와 라면수프로만 맛을 낸 밥 먹을 먹는데, 10시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거친 산바람을 맞으며 흔들거리며 걸었던 시간도,
물이 없어 사탕 하나를 먹으면서 목이 타들어 갔며 지나갔던 길도,
왜 이 길을 걷자고 한 거냐고 동생과 투닥투닥 거리며 싸웠던 순간들도 뜨끈한 국물 한 모금을 입안으로 넘기는 순간 다 잊혔다. 그냥 나는 그 2% 부족하고 칼칼한 맛만 나는 뜨끈한 라면 국물이 식도를 타고 위로 들어가는 그 순간을 느끼려고 10시간을 걸었구나. 산행 후 먹는 라면은 정말 인생 최고의 맛이라던데, 과연 사실이다.
*진짜 뜨끈한 끓는 물에 라면수프 1개 풀어서 마카로니만 끓여 만든 최고로 맛없게 끓여진 극락의 맛
라면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소고기 볶음 고추장을 챙겨갔다면 스페인 마트에서 판매하는 스페인식 햇반을 사서 밥과 손질된 샐러드 팩을 사다가 비빔밥을 해 먹어도 된다. 이 비빔밥에 참치캔 하나만 추가하면 한국이 따로 없다. 만약 깡통 캔으로 된 반찬을 샀다면? 이 역시 스페인식 햇반을 데워 뜨끈하게 한 그릇 뚝딱하면 된다. 만약에 얼큰하게 육수를 낼 수 있는 조미료를 챙겨 왔다면 더 좋다. 장바구니 물가가 저렴한 스페인에서 피망 한 개, 양파 한 개, 감자 한 개 그리고 좋아하는 고기 하나 뚝딱 챙겨서 얼큰한 찌개(수프)도 끓여먹을 수 있다.
스페인까지 가서 왜 현지 음식을 먹지 않고 자꾸 한국음식만 먹느냐고 궁금해 할 수도 있다. 현지에서 먹는 현지식이야 말로 그들의 삶에 녹아들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인데 왜 입맛은 한국에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처음 산티아고를 갔을 때는 한국음식 전혀 그리워할 일 없다고 믿었다. 평소에 피자, 햄버거, 파스타, 샌드위치도 자주 먹고 오히려 자주 생각이 났으니까. 그런데 이곳에 오니 매일 파스타, 토르티야, 샌드위치를 먹으니까 오히려 얼큰하고 개운한 국물로 생각나는 한국인 DNA가 계속 깨어났다. 왜 그런가 가만 고민해보니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매일 한식을 먹다가 어쩌다 한 번 서양 음식을 먹었던 것이니 맛있고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곳에서는 오히려 매일 서양 음식을 먹으니 지워졌다 생각했던 코리아 미뢰가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DNA는 몸이 지치면 지칠수록, 한국을 떠나온 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점점 강해진다.
대도시만 들르면 한국음식을 파는 중국 마트를 찾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