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백룡이 무서워

[알림] 필드에 푸른 눈의 백룡이 소환되었습니다.

by 방망디

영국의 땅을 밟자마자 한국에 가고 싶었던 것은 단순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나라에서 숙소를 찾아가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더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얼른 한국으로 되돌아오고 싶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곳에 내가 도착했는데 왜 나는 그곳이 무서웠을까.


나는 영국이 낯설지 않았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나와 함께 성장한 해리포터가 있었다. 영국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해리포터 말이다. 물론 이 영화의 주된 무대는 호그와트이긴 하지만 영화의 시작은 항상 해리의 집에서부터 시작한다. 런던에 있는 해리는 방에만 갇혀있기도 했지만 종종 런던의 길거리를 누비면서 런던의 풍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골목골목 사이에 숨겨져 있는 런던만의 축축하고 조용한 감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해리포터만이 아니라 오만과 편견, 노팅 힐, 셜록홈스 등 다양한 영화와 소설을 통해서 나는 영국을, 그리고 유럽을 간접 경험했었다. 그리고 간접경험만 했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방과 후 수업으로 신청한 '원어민 영어회화'와 대학교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초급영어회화'를 진행한 외국인 교수님들 덕분에 나는 꽤 서양사람이 익숙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 안에서, 내 바운더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으니 설레는 일이었다.


내가 영국을 곁눈질로 본 것은 언제나 필터가 한 겹 입혀진 영화였거나

내가 유럽을 느낀 것은 언제나 활자로 남겨진 것을 내 상상을 통해 새로 재구성한 소설이었거나

내가 다른 인종의 사람과 함께한 것은 언제나 주변에 여럿의 한국인과 함께였던 수업이었다.


그러니 내가 익숙한 것이라곤 꼴랑 내 동생 하나만 있었던 이 곳이 무서웠던 것이었다. 아니 무섭다 못해 공포스러웠다. 숙소를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에 앉아 있는 이 순간이 무서웠다. 내 눈앞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 금발의 푸른 눈을 한 낯선 생김새의 그 사람의 모습에 나는 온 신경이 바짝 서고 말았다. 기어코 내가 이곳에, 주변에 한국인의 'ㅎ'도 없는 이곳에 왔구나. 내가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그 편한 곳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이 미지의 세계에 제 발로 걸어온 걸까.


"민정아, 정말이야. 우리 집에 갈까? 나 지금 집에 쫌 가고 싶어"


내 공포가 동생에게 까지 전달되긴 바라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이 두려움을 입 밖으로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누군가 내 두려움을 알아주기를, 내 이 떨리는 심장을 다독여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전혀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내 동생의 손일지라도 냉큼 잡아챌 만큼.


"또? 아까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그 소리를 했잖아."


"그러니까. 나 진심이라니까? 여기 좀 무서운 것 같아."


내 무서움은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고 '이 언니 또 오락가락하네'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본 동생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정신을 한국에 두고 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새삼스럽게 무서워하는지 되려 궁금해했다.


"일단 숙소에서 짐을 풀고 생각해."


그래. 일단 지금의 퀘스트인 숙소에 도착하는 것만 생각하자.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를 둘러싼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날이 저물 때까지 숙소에 도착하지 못해 이 무거운 배낭을 들고 생전 초면인 낯선 런던의 거리를 헤매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니까.


사랑의 상처를 다른 사랑으로 치료하듯이 공포는 새로운 공포가 입력됨과 동시에 이전의 공포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 차지한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숙소가 지금 타고 있는 트램에서 몇 정류장이 남았는지, 정류장의 이름은 무엇인지, 정류장에서 내려서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영어로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등 짐을 풀기까지 내가 해치워야 할 것들이 차례로 머릿속에 입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순서를 매겨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으니 내 앞에 있던 푸른 눈의 백룡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트램의 유리창 너머로 런던의 풍경만 아지랑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