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나를 지배한 건 외로움이었다.

[알림] 상태 이상(외로움)이 발생하였습니다.

by 방망디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단은 세계 공용어인 '영어'와 산티아고 순례길의 나라 스페인의 언어 '스페인어'였다.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배웠던 암기식 영어가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전부였고 그건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암기식 영어라 함은 말하기는 어렵지만 듣기와 쓰기는 수월한 그런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어디서부터 얻어낸 책자에 담긴 정보, 지나가는 마을에 적혀 있는 마을의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있는 박물관에 쓰여있는 영어로 된 정보는 읽을 수 있지만 함께 순례길을 걷는 이들과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몸짓, 발짓을 이용하고 필요한 단어들을 몇가지 떠듬떠듬 나열하여 말하는 상태를 말한다. 몸으로 말하는게 아니라면 몇 년 전 학교 교과서 어디에서 본 오래되고 낡은 기억을 끄집어 내 읽었던 다이얼로그(dialogue *지문) 속 답을 끄집어 내 대답을 해야 했다. 그 답이 나의 솔직한 대답이 아니더라도 나는 다른 답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기억 어느 속에서 배웠던 대로만 대답을 했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가 "How are your today? (오늘 어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컨디션이 최악이더라도 내 상태가 어디서 어떻게 나쁜지 설명하기 어려워 "i'm find very happy(나는 좋아, 정말 행복해)"라고 대답을 해야 했고 나도 상대의 컨디션이 궁금할 때면 "And you?(너는)"라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때면 수능시험의 영어듣기를 푸는 것처럼 미간에 인상을 지푸려가며 상대의 말을 듣고 나만의 언어로 해석하기 바빴다. 한국인을 제외하고 길 위의 모든 이들과 대화를 할 때면 상대와의 대화시간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오직 그들의 말을 해석하는데만 매달려 가기 급급했다. 처음에는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이유였겠지만 결국 남은 건 그들의 말을 '한국말로 바꾸는 것'에만 매달리는 것이었다.


처음 다른 나라의 순례객들을 만날 때는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들을 활용하여 최대한의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을 했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들었던 영어회화를 떠올리기도 하고 인터넷을 활용하여 지금의 수준보다 더 나은 상태를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나의 영어 수준을 올라갔을지 모르겠지만 그 의지의 배경이 된 외국인들과 친해지겠다는 나의 의지도 빛을 바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영어로 밥은 먹었어?라고 물으면 나는 그 즉시 영어를 한국말로 번역하여 '아 밥은 먹었구나'라고 물어봤구나. 그럼 나는 '먹었다 / 안 먹었다.'라고 대답해야지. 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닌 정보를 처리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두 명의 사람이 만나 한 가지의 큰 공통점을 가지고 이 길을 지나오면서 어떤 것을 먹었는지, 어느 마을에서 어디 식당을 갔는데 그곳이 맛집이 더라 하는 공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오직 (그들은 몰랐겠지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식으로만 대화를 쳐내기에 바빴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색하게 웃으며 내 진심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대화를 빨리 끝낼 수 있는 대답을 고민했고, 숙소 어디선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살펴보다 그들이 가는 동선을 피해 돌아가곤 했다. 동생과 둘이 여유롭게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푸짐한 한 끼를 만들던 주방에서도 누군가 들어오면 함께 있는 시간이 괴로워 괜히 인덕션의 온도를 최대 온도까지 높이고 조금 맛이 없더라도 빠르게 조리를 끝마쳤다. 그렇게 모든 알베르게에서 사람을 피해 다녔고, 그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대화를 함께하는 시간을 외로워했다.


그 오랜 여정을 함께하는 사람들 중 아무도 친해진 사람이 없이 오직 나와 동생, 단 둘만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나갈 땐 활짝 웃으며 '부엔 까미노'를 빌어주던 그 둘은 주변에 오직 둘만이 있을 때 서로에 그 길을 걸으며 느낀 고통에서 대해서 인상을 지푸리며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주 작은 사소한 것(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안 좋았다. 지나가는데 나는 똥냄새에 기분이 좋지 않다.)부터 왜 길을 걷는지 모르겠다는 이 여행의 대전제까지 뒤흔들며 언성을 높이며 토닥이며 이 길을 걸어 나갔다. 까미노를 걸으며 정말 많은 생각과 감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안에서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거나 아주 가끔 동생에게만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을 뿐이었다.


함께 걷는 사람들에게 내가 경험한 까미노의 대한 이야기를 살짝이라도 꺼내놓으면 그들은 아주 반갑게 맞아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속살거렸을 텐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마음속의 빗장을 꽁꽁 잠가둔 채 혼자 그 모든 감각들을 오감으로 받아들이 채 소화하기 급급했다. 처음 피레네 산맥을 올랐을 때도, 10시간을 걸어 첫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도, 한국에서 보기 드문 헤아릴 수 없는 드 넓은 들을 발견했을 때도, 길 위에서 한가롭게 거니는 소들을 발견했을 때도,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진 꽃들을 봤을 때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혼자만의 감상으로만 남겨둔 채 그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안부를 물었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결국 혼자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친구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많은 순례객들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결국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 밤 잠들면서 오늘도 그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자책과 후회를 하며 더 나아진 나를 그리며 잠들었지만 나는 매일을 실패했고 좌절했다.


그 긴 길 위에서 나는 아무도 친해지지 못한 채, 산티아고에 도착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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