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길 잃는 사람도 있어요?

[알림]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by 방망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네! 있습니다. 있어요. 그 사방팔방으로 까미노 길은 이곳이라고 표시해를 해 둔 그 순례길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그게 바로 저이구요. 저는 총 두 번의 완벽한 길을 잃기가 있었습니다. 놀랍다구요? 제가 생각해도 그러네요.


아, 제가 혹시 길치냐구요? 에이~ 전혀요. 가끔 지도 보는 게 헷갈리긴 하지만 길 하나는 또 기가 맥히게 잘 찾는 인간 네비게이턴데. 왜 길을 잃었는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러니까 들어보세요. 이게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니까요.


처음에 길을 잃어버릴 뻔했던 건 팜플로나에서부터였어요. 몇 날 며칠(이라고 해봤자 고작 3일이지만) 산골짜기에 있는 외길만 걸어서 그런지 도시에 있는 갈림길에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분명 노란색 화살표를 보고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새 함께 걷던 순례자들은 사라지고 저와 동생만 걷고 있었어요. 한참을 둘이서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또 다른 순례자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라서 걷고 있는 몇몇의 순례자들을 발견했죠. 그렇게 안심을 하고 계속 걸어갔어요. 도시 곳곳에 까미노 화살표가 있어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죠. 그리고 나오는 순례길 표식을 확인하는데 그 길은 자전거 순례자를 위한 길이었던 것 같아요. 조가비 아래에 자전거 표시가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상했던 거죠. 우리와 함께 출발한 많은 순례객들은 다 어디로 가고 몇 명의 순례자들만 남아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걷고 있다는 게. 그날을 기점으로 저희는 조금 더 꼼꼼하게 순례길의 표시를 확인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아 그래서 다짐이 성공했냐구요? 성공했으면 이 이야기를 들려드릴 필요는 없었겠죠.


인생이 꼭 생각했던 대로, 결심한 대로 흘러가진 않더라고요.


처음 길을 잃었던 날은 팜플로냐 사건 이후로 한참이 지난날이에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날은 아스트로가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 라바날 데 까미노라는 마을로 가는 날이었어요. 이날부터 점점 오르막길을 오르는 코스였더 터라 꽤 긴장을 하고 있었죠. 아침 일찍 일어나 짐을 다음 마을로 보내고 여느 때처럼 바에 들러서 커피를 한 잔 마셨어요. 그날은 5월 치고 꽤 쌀살해서 따뜻한 카페 라페(cafe con leche)를 마시며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순례자들과 함께 새로운 여정을 떠났답니다.


도시를 떠나면 의례 나오는 것처럼 도로와 들을 가로지르는 길을 걷기도 하고, 광활한 스페인의 들에 수놓아진 돌 모양 까미노 표시를 보며 '이런 큰 화살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해하기도 하며 계속해서 함께 길을 걸었어요. 그리고 그 길의 중간에는 작은 성당이 있더라구요. 누구나 세요(도장)를 찍을 수 있도록 비치해둔 작은 성당은 아주 작았지만 따뜻하고 정갈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안온함에 마음이 풀어져 잠깐 의자에 앉아 앞으로 걸어갈 우리의 여정을 축복해달라고, 신의 의지에 따라 우리는 길을 걸을 터이니 작은 사고도 잃어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아주 찰나를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함께 걷던 이들은 전부 사라져 있었습니다. 분명 다시 저마다의 속도로 길을 떠났던 거겠죠. 우리도 잠시 놓아둔 스틱을 들고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10분, 20분을 걸어 작은 마을에 도착했는데 마을 안을 채워야 하는 순례자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따라와야 할 사람들도 없었어요. 그 고요한 아침의 마을에는 오직 고양이 가족만 우리를 따라올 뿐이었어요.


우리가 한 발짝을 걸으면 담장에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따라 걸었고 우리가 두 발짝을 걸으면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양이가 따라 나와 우리의 옆에서 나란히 길을 걸었어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답니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산책에 즐거워하기도 잠시 이제 우리는 확실히 알았어요.


"언니, 우리 길 잃은 것 같아. 잘못 들어왔나 봐."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렇게 아무도 없을 수는 없잖아? 그래도 조금만 더 걸어보자, 뭐라도 있겠지."


조용한 마을을 소란스럽게 할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우리를 붙잡더라고요.


"Camino??"


할아버지였나, 할머니였나. 하여튼 그 마을에 사시는 분 같았어요. 순례자들이 영 돌아다닐 길이 아닌데 계속 어슬렁거리는 게 안타까웠는지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뒤에서 '순례자니? 너 길을 잃었니?'라는 의미로 물어보신 것 같았어요. 더 많은 말을 하셨는데 영어는커녕 스페인어도 못하는 우리는 그저 한 가지 말 밖에 할 수 없었답니다.


"Si (네!) si!! (저는 순례자예요. 길을 잃었어요)"


계속해서 순례자라고 외치던 저는 이곳을 떠나기 전에 외웠던 마법의 단어를 외쳤죠!


"Dondé es puebro? Dondé es camino de cantiago???"


이 말의 뜻은 직역하면 '마을 어디 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디 있어요?'라는 뜻이랍니다. 그렇게 서로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마을 주민과 어리숙한 침입자는 눈빛을 교환했어요. 그때 저는 직감했답니다. '아, 나 이제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머나먼 타지에서 장기가 팔리는 일은 없겠구나.' 친절한 주민 어르신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가리키며 손짓을 했어요. 그리고 새를 내쫓듯 손짓을 휘적휘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냥 다시 뒤돌아 가라는 말이었죠.


할아버지의 짧고 간결한 말은 이 길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길인 것을 알았음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계속해서 앞으로만 걷고 있던 저를 일깨워주는 일이었습니다. 점점 찾아보기 힘든 까미노 표시도, 아무도 뒤따라 걸어오지 않는 그 길에도 저는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 길일 거라는 고집과 아집으로 모든 것을 모르는 척하고 계속해서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왜냐면 내가 지나온 길이 틀린 길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으니까요. 내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렇게 우기고 우겨 아침부터 온 진을 빼서 도착한 곳에서 만난 까미노의 현자에게 '잘못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인정했습니다.


아. 내가 틀렸구나. 나도 틀릴 수 있구나.

괜히 내가 고집을 부러 동생까지 힘들게 만들었구나.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동생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조금 더 잘하는 내가 되고 싶었는데.


겨우 길을 잃었다는 것을 확인받는 일이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다른 것을 인정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이번 여행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 동생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 언니로서 우리에게 닥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제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예민했고, 실수하면 우리 자매 큰일 난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강박적으로 내용을 확인하며 까미노를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젠 순례길을 즐기는 것이 아닌 '순례길을 걷는 미션'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매일 아침 지치고 예민한 나를 달래는 날들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 아까 그 마을에서 만난 고양이 가족이 너무 귀여웠어! 냥냥이를 본다는 건 행운이야!"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더 가볍게 느껴졌어요. 신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