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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Jun 05. 2023

예비순례자의 필수준비물 : 멘탈

순례길을 걸으시고 싶다고요? 마음의 준비는 됐나요?

나는 늘 그 길이 그립다. 건조한 공기로 내리쬐는 태양을 등지고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길을 계속 내 걸었던 그 순간들을 추억한다. 내게 주어진 과업이라곤 오직 한 발자국을 내딛는 것이 전부였던 날들을 기억한다. 그 시간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 순례길 위에 다시 오른다면 나는 그 길을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매일 20~30km씩 30일 이상을 걷는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다. 삶의 이유를 찾고 싶다거나 터닝포인트를 찾아 돌아가겠다는 어떤 거창하고 막연한 목표를 가진채 걷는 다면 그 길은 두 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게임처럼 단순히 길을 걷는다는 목적을 달성한다고 보상을 주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단순히 앞으로 걷기만 한다고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의미는 그 길을 걷고 있는 나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의 첫 순례길은 대학교 3학년을 마친뒤였다. 고등학교 3학년때처럼 수많은 갈림길에 서있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나와 맞는 전공을 선택하느냐고 고민이었다면 예비 취준생이었던 그때는 나와 맞는 직업을 고민했다. '이제 뭘 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채 그 길을 걸었던 어린 순례자는 매일 내딛는 걸음에 고민을 담았고, 여행이 끝난 어느 날 자연스레 답을 얻었다.


하지만 30살을 앞둔 어느 청년의 두 번째 순례길에서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은 절대로 다시 안 걷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걸을 수 있는 길이 끝나가는 시점에 30살이 되기 전에 다시 이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다. 그때의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떤 힘을 받았던 것처럼 30살의 나에게도 어떠한 위로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 다짐은 계속해서 내 안에 남아 사회로부터 도망치는 '핑계'가 되어주었다.


첫 회사생활의 풍랑에 휩쓸리고 떠밀려 바스러졌던 나는 단단해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30살이 되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시 걸어야 해, 그렇게 나와 약속했어'라며 뒤도 안돌아보고 무작정 퇴사를 했다. 그저 도망치고 싶어서. 회사를 나오고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난 뒤에도 언제 받았는지도 모를 상처란 망령은 계속해서 나의 어깨에 남아 나를 따라다녔다.


본격적으로 순례길을 걷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팜플로나로 길을 떠났을 적에도 '아직 회사에서 얻은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며칠을 더 쉬었고, 길을 걷다 조금만 지쳐도 다음 마을까지 버스를 탈까 고민을 했다. 이미 사회에서 얻은 상처(사실 이 상처의 유무들도 고민해봐야 함)는 이미 흉터가 되었지만 나는 아문 상처를 다시 보고, 비교하며 스스로를 아픈 환자 취급하기만 급급했다.


그래서였나.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내가 얻은 것은 도망치고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뿐이었다. 그 길을 걷고 싶다는 이유로 회사까지 그만두었지만 막상 걷고 있는 순례길이 내 생각과 다르자 냅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는 버스표를 끊었다.


레온에서 마드리드로 향하는 시간 동안 마음 안에 작은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 주제에 이 길을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지금은 끝까지 못 걸었지만 언젠가 곧 다시 와서 이 길을 걸으면 된다는 마음이 엎치락 뒤치락 했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뒤에도 제법 존재감을 나타낸 그 가시는 한국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저 도망칠 도구로 순례길을 이용했던 나는 순례길에서 오는 피로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또 도망쳤다.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자 하는 당신은 어떠한 이유로 걷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이유가 육체의 고통에 작아진 마음을 단단히 잡아줄 정도일까 궁금하다. 그 이유는 엄청 중요하지 않다. 걷다가 힘들면 나처럼 순례길을 도망쳐도 된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을 걸을 테니까. 그때는 꼭 끝까지 걸을 거니까. 걷다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 어쩌면 포기하는 것 또한 용기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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